우리 사회를 바꾼 ‘판결’은?
우리 사회를 바꾼 ‘판결’은?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2.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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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심판하는 곳. 바로 헌법재판소다. 법도 시대를 반영하기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도 변화해야 한다. 법이라고 늘 정의로운 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법이 있다는 얘기다. 특히 독재 정권 아래 만들어진 법은 국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니 법도 수시로 심판해야 할 대상에 다름없다. 책 『우리 사회를 바꾼 결정과 판결』의 저자 박동석은 “지금 우리는 법과 헌법재판소가 있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헌법재판소의 심판 가운데, 여성들이 보다 살기 좋은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견인했던 판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호주제 폐지’다.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것인데, 여기서 호주는 아버지를 지칭한다. 즉 여성이 배제된 부계혈통의 남성중심주의로 점철된 법이 바로 호주제였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에 호주제 관련 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호주제의 폐지로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했다. 호적 대신 가족관계등록부가 사용되면서 가족 관계의 변동 사항은 모두 ‘나’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다. 자녀의 성과 본 역시 부모가 협의하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도 있도록 했다. 동거인의 지위였던 어머니는 아이들의 법적 친권자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재혼 가정에서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의 성과 본을 바꿀 수 있게 됐다.

박동석은 “호주제 폐지 이후 등장한 가족관계등록법에는 여전히 남성 중심 원칙이 존재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성차별적인 요소가 사라진 건 사실”이라며 “호주제가 폐지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호주제 찬성자들의 우려처럼 되지는 않았다. 물론 가족 간 유대는 조금 느슨해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호주제 폐지의 영향이 아니라 핵가족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호주제 폐지가 우리 사회를 좀 더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게 박동석의 설명이다.

다음은 ‘병역법’과 관련한 판결이다. 병역법 제3조 제1항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병역법 제3조 제1항에 대한 헌법 소원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각하나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남성에게만 부과된 병역의 의무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주된 논리다.

박동석은 “남성들은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되었는데, 남성에게만 병역을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남녀가 동등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부분이 남성 중심이고, 또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성평등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물론 군대가 신체적 능력만을 필요로 하는 곳은 아니다. 군대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여성의 생리, 임신, 출산 등이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다퉈볼 여지가 다분하다. 그러나 정치‧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성평등이 완전하게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에게 병역을 부과하는 것은 또 다른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는 게 박동석의 설명이다.

마지막은 ‘낙태죄’ 관련 부분이다. 2019년에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박동석은 “헌법재판소는 자기 결정권에는 여성이 그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 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또한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 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다고 보았다”고 설명한다.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한 임신 22주 이전까지는 낙태를 허용하고, 독자적 생존이 가능한 22주 이후엔 낙태를 금지하는 타협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회는 낙태죄에 대한 개정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중요한 점은 임신 시기를 불문하고 낙태를 금지했던 것과 달리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임신 시기에 따라 일부 허용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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