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어떤 슬픔은 슬프다는 말로는 모자라서 꼭 시를 한 편 써야 했다.어떤 경험은 사실이라는 말로는 버거워서 꼭 픽션으로 써야 했다. 더 이상 입을 열기 싫을 때, 입을 열 수 없을 때,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백지가 나를 다독였으므로 나는 썼다.<18쪽>
성과를 목표로 두는 순간 사람은 조급해지고 그 조급함은 모든 선택에 영향을 줘서 결국 삶을 조금씩 앗아간다. 구질구질해진다. 나는 어떻게든 명명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쪼개면서 살아왔다. 착한 딸, 평범한 아이, 고학력자, 화목한 가정, 개념녀, 나의 이름 자체. 그러나 이제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한다. 별거 없음이나 솔직함이나 담담함 마구잡이 나는 그런 게 좋다. 교훈 없음이 좋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도 많이 읽고 독후감도 멋지게 쓰는 학생이었지만 사실 내가 독후감에 쓰고 싶었던 내용은 ‘이것에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런 게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겠다.<21~22쪽>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는 ‘정중지와井中之蛙’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선생님들이 그토록 말했던 성어. “여기는 우물이야, 더 큰 곳으로 가야 해.” 그러나 나는 서울이야말로 견고하고 높은 벽을 가진 우물 같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너네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보았을까. 식견을 넓혀야 하는 쪽은 어느 쪽일까.
우물 안 개구리.
선생님, 저희는 개구리가 아니에요. 우물 벽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니에요.
나는 오래도록 이 말을 하고 싶었다.<42~44쪽>
[정리=전진호 기자]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차도하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 340쪽 | 15,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