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과 책방의 공존을 꿈꾸는, ‘아직 독립 못한 책방’
약국과 책방의 공존을 꿈꾸는, ‘아직 독립 못한 책방’
  • 유현승 대학생 기자
  • 승인 2021.11.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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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아닌,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N잡러’들은 보통 본업을 한 후 남는 시간에 부업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책방 주인이 있다. 전국 최초로 약국 안에 책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박훌륭 약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박훌륭 약사는 약사와 책방 주인이라는 직업에 그치지 않고, 두 권의 책을 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올해 자신의 이름과 책방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이름들>과 <약국 안 책방>을 출간했다. ‘N잡러’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푸른약국 안에 위치한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을 찾았다.

평범해 보이는 이 약국의 간판 옆에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이라는 작은 간판이 달려 있다. 약국 안으로 들어서니 왼쪽 선반에는 책이, 오른쪽 선반에는 약이 놓여 있었다. 책과 약이 같은 공간 안에 놓인 것이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책과 약의 한가운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박훌륭 약사 겸 책방 주인을 발견했다.

우선 N잡러로 일하고 있는 그가, 자신의 뒤를 이어 또다른 N잡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궁금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는 말이 있다. 생각한 만큼 만족스러운지 아니면 오히려 힘이 드는지 물었다. 그는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게 된다면 모두들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job’까지는 만들지 말고 경계선에서 즐기길 권한다. 처음부터 직업을 감안하고 시작하면 쉽게 지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약사, 책방 주인, 작가라는 명칭 중에 책방 주인이라는 명칭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N잡러답게 박훌륭 약사에게 약사는 이미 또다른 진로였다. 그는 카이스트에 다니다가 ‘반수’를 하여 부산대 약대에 입학했다. 그에게 카이스트 학벌이 아깝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응원해 주었는지도 물었다. 그는 “학벌이 아깝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 같다. 아깝지만 때론 버려야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참고로 주변 사람들은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박훌륭 약사는 <아직 독립 못한 책방>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게시글을 주기적으로 올린다. 책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량과 긴 독서시간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확보하는지 물었다. 그는 “정말 틈틈이 책을 읽는다. 근무중에는 물론이고 외부일정이 있을 때도 책 1권은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책 선정 기준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책은 아주 먼 뒤에라도 제가 읽을 책으로 주로 고른다. 최근엔 10권 중 2권 정도는 신간 중에 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들여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독립서점들은 저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여 독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은 그렇지 않은데, 박 약사는 “어차피 지금 인스타그램 상에서도 서로 소통할 분은 하고 있고, ‘책’이나 ‘독서 행위’를 위해서 어떤 기준이나 틀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게 자연스럽고 좋다”고 답했다.

동네책방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쟁쟁한 오프라인 대형 서점들, 밀리의서재와 같은 전자책이나 온라인 도서배송 플랫폼하고도 경쟁해야 하는 영역이다. 어쩌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는데, 박 약사는 자신감 넘쳤다. 그는 “동네책방은 사실 그들과 경쟁하는 플랫폼은 아니다. 동네책방들이 아무리 잘 되어도 온라인 서점의 매출을 따라잡을 수 없다. 동네책방은 여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다. 공통적으로 책을 판매하기는 하지만 책만 있다면 사람들이 동네책방을 찾지 않는다. 아마 몇 년 뒤에도 동네책방들이 많이 존재한다면 그건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동네책방은 언제든 존재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약사와 책방주인을 병행하는 것을 계속할 것인지, 한쪽으로 틀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직업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그는 “아무래도 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은, 지금 이 자체가 아이덴티티라 이 상태로 쭉 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아직 독립 못한 책방>은 그것이 품고 있는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봐도 좋다는 용기와 신선함을 선사해 주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은 책방이었다.

[독서신문 유현승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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