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비틀리고 억눌린 욕망이 불러일으킨 심판과 복수의 드라마
[책 속 명문장] 비틀리고 억눌린 욕망이 불러일으킨 심판과 복수의 드라마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10.20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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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가르쳐 주마, 피터. 남들이 하는 말을 절대로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남들은 너의 깊은 속을 절대로 모르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을게요.”
“하지만 피터, 말을 꼭 그런 식으로 할 필요는 없단다. 남의 말을 아예 귀담아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보통 모질게 자라서 모진 사람이 되게 마련이거든. 넌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 해, 상냥한 사람이. 넌 어쩌면 남들한테 큰 해를 입히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 왜냐면 넌 강하니까. 너 상냥함이 뭔지 아니, 피터?”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
“그래, 그럼 가르쳐 주마. 상냥함이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앞길에 놓인 걸림돌을 치우려고 애쓰는 거란다.”<68쪽>

그러나 필이 보는 것은 대자연의 피조물만이 아니었다. 자연 자체-자연이 스스로를 늘어놓고 정리하는, 어지럽고 천진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에서 그는 초자연적인 것을 보았다. 목장 저택 앞의 언덕에 점점이 드러난 바위에서, 언덕 자락을 여드름처럼 흉하게 뒤덮은 세이지브러시 덤불에서, 그는 질주하는 개의 놀라운 형상을 보았다. 개의 날씬한 두 뒷다리는 튼튼한 양어깨를 앞쪽으로 떠밀었다. 더운 김을 뿜으며 아래로 수그린 주둥이는 북쪽 산의 골짜기와 능선과 산그늘로 도망 다니는 겁에 질린 어떤 것-어떤 생각-을 쫓고 있었다. 그 추적이 어떻게 끝날지 필은 머릿속으로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개는 먹잇감을 붙잡을 운명이었다. 그는 눈을 들어 산을 보기만 해도 그 개의 숨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개가 그토록 또렷이 보이는데도 그 형상을 알아본 이는 필 말고는 딱 한 사람뿐이었고, 조지는 결코 그 한 사람이 아니었다.<95쪽>

그러니 상상해 보라. 그해 여름 개울가에서 알몸이 되어 물에 들어가 목욕할 준비를 하던 필이, 까치도 아니고 산토끼도 아닌 어떤 것이 바스락대는 소리를 듣고 돌아섰는데 눈앞에 ‘낸시 아가씨’가 서 있었을 때 느꼈을 격분을. 그 소년은 사슴처럼 우아하게 서서, 눈 또한 사슴처럼 커다랗게 뜨고 있다가, 필이 자신을 향해 돌아서자 사슴처럼 날렵하게 달아나 무성한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필은 냉큼 허리를 굽히고 셔츠를 집어서 벌거벗은 몸을 가렸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년이 서 있던 자리를, 이 성스러운 공간에 뚫린 너덜너덜한 구멍을, 그 추한 공백을. 필이 받은 충격은 분노로 변했고, 그의 목소리는 개울물 소리를 뚫고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꺼져.” 그가 외쳤다. “여기서 당장 꺼져, 이 개 같은 새끼야.”<229쪽>

[정리=전진호 기자]

『파워 오브 도그』
토머스 새비지 지음 | 장성주 옮김 | 민음사 펴냄 | 392쪽 |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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