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황교익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너무 애쓰지 마시라”
[명사에게 듣다] 황교익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너무 애쓰지 마시라”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1.0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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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사진=최현식 PD]

황교익은 ‘대한민국 1호 맛 칼럼니스트’로 불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글에는 ‘음식의 맛’에 관한 설명이 별로 없다. 이를테면 그는 삼겹살이 돼지의 어느 부위이고, 살코기와 비곗살의 비율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맛있는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한국인이 ‘왜’ 삼겹살을 많이 먹게 되었는지를 역사적 맥락과 연관 지어 풀어낸다.

황교익에 따르면, 60~70년대 한국의 대규모 양돈업은 일본에 수출하기 위한 용도로 출발했다. 안심과 등심 등 고급 부위는 일본으로 수출했고, 한국에 남은 것은 삼겹살, 머리, 족발, 내장 등 값싼 부위였다. 그 후로 우리나라에 족발집과 순댓국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기름이 많은 삼겹살은 햄으로 만들기 부적합해 자연스레 구이용으로 보급됐다. 한국인이 삼겹살을 좋아하게 된 이유에는 이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황교익은 음식에서 시대와 인간을 길어 올린다. 이는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책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와 깊은 관련이 있다. 황교익은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라. 그 사람들이 사는 자연과 사회를 보라”고 했던 해리스의 말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앞으로 써야 할 글의 방향타를 얻은 것이다.

그가 최근에 펴낸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역시 음식이 아닌 시대와 인간에 관한 책이다. 제목이 말하는 ‘먹고’의 대상은 음식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지난달 14일 인터뷰를 위해 망원역 근처 카페에서 황교익을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은 어떤 마음을 먹고 자랐나요?”

Q. 신간 제목이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이다. 요즘 어떻게 먹고살고 있나.

“원래 강연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강연 시장도 많이 침체되어 있다. 가끔 비대면 강연을 하는데, 그게 고역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완급조절을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냥 혼자 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참 힘들다. 인간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살아야 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요즘 온라인 강연을 하면서 절감하고 있다.”

Q.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출판사에서 요즘 청년들이 직업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선배의 입장에서 이제껏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에 대해 써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쓰게 됐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은 다 조작되고 편집된 거여서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는 없지만, 내가 살아왔던 과정을 최대한 가감 없이,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Q. 첫 직장이 출판사였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농민신문>에 입사한 계기가 궁금하다.

“편집자는 기본적으로 ‘남의 글’을 다루는 사람이다. 그 작업이 재밌기도 하다. 원고를 어떻게 다듬고, 제목이나 표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전반적인 북 디자인(book design)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처럼 똑같은 원고라도 제목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근데 이 일을 1년 정도 하니까 나랑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오게 됐다.”

Q. 기자는 적성에 맞았나?

“출판사는 ‘내가 뭘 하면서 살까?’라는 고민 끝에 갔던 길이었다면, 사실 신문사는 생존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출판사는 적성에 맞지 않았고, 신문사는 맞았던 거지. 인생이 원래 그렇다.”

Q. 2년만 다니자고 했던 <농민신문>을 12년 동안 다녔다.

“나는 원래 미술 전문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솔직히 농업은 내 관심 분야도 아니었다. 근데 <농민신문>이 농협중앙회 자회사니까 복지가 참 좋았다. (웃음)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닐 땐 보너스도 넉넉했고, 집 장만할 때 대출도 해주고, 자녀 학비를 다 지원해줬다. 모회사가 돈이 많으니 개인 기업과 달리 기자들에게 실적을 내라고 압박하지도 않았다. 기자들은 그냥 취재만 열심히 하면 됐다. 그래서 딱 2년만 다니자고 한 게 12년이 됐다. 12년 동안 잘 즐긴 거지.”

Q. 그렇게 편한 직장을 나이 마흔에 그만뒀다. 이유가 뭔가.

“심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15~20년 후에 정년퇴직하면, 내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안정적으로 정년을 맞는 게 나쁜 인생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편안하게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Q. 아무 계획 없이 그만둔 건가.

“퇴직금으로 몇 달은 버티지 않을까, 라는 게 첫 계획이었다. (웃음) 그리고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직장을 그만둘 때, 나는 이미 음식 전문 기자로 업계에 소문이 좀 났었다. 그러니까 농민신문 기자였을 때도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에 원고를 썼다. 직장을 그만둬도 밥은 굶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사진=최현식 PD]

Q. ‘음식 인문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하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음식 인문학, 정확히 무엇인가.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학문이 음식 인문학이다.”

Q. 예를 들어서 설명해준다면.

“한국 사람들이 떡볶이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언론이나 방송에서 ‘맛집’이라는 말을 써가며 대구에 있는 할매 떡볶이가 맛있네, 신당동에 있는 떡볶이가 맛있네, 하는 이야기만 끊임없이 했다. 하지만 나는 ‘왜’ 한국 사람들이 떡볶이를 맛있다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다. 그것을 시대적, 사회적 맥락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내 글이 음식에 관한 이야기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미술도, 음악도, 영화도 다 그렇다. 그런 예술들을 경유해서 마지막에는 시대와 인간을 이야기한다. 지금 <오징어 게임>이 화제인데, 어떤 영화평론가는 배우의 연기나 화면의 미장센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지만, 다른 영화평론가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의 계급 문제, 극심한 빈부 격차를 이야기한다. 소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결국 글이라는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을 기본으로 한다. 그걸 음식에 한정한다면 음식 인문학인 거지.”

Q. 특정 지역에 따라 인기 있는 음식이 다른 이유도 음식 인문학과 관계가 있나.

“나는 그걸 ‘사회적 미각’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미각은 사회적 결정물이다. 사람들의 입맛은 여러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완성된다.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은 뇌와 신경 조직이 똑같다. 그러니까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각에 대해 반응하는 기제가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지역에서 연구되는 의학이 보편성을 가지는 거다. 다시 말해 피부색, 남녀의 차이 정도만 빼면 보편적으로 인간은 똑같은 거지. 그래서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전부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사람마다 다를까. 남한 사람들은 열광하는 떡볶이를 왜 북한 사람들은 싫어할까. 그런 건 사회적, 지리적 요인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것을 설명하는 틀이 음식 인문학이다.”

Q. “남이 나를 주목하든 말든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일에 전문성을 얻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나.

“일을 최대한 즐기는 수밖에 없다. 내게 주어진 일이지 않나. 세상에 이 일처럼 재미난 게 없다고 스스로 되뇌는 거다. 나는 삶 자체가 음식 이야기로 가득 차게끔 했다. 다른 말로 하면 몰두(沒頭)이다. 소벼룩이 소의 등에 붙어서 머리를 박고 열심히 피를 빨다가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뚝 떨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말하자면 고도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충분히 즐기는 상태가 바로 몰두이다. 그 몰두를 전문 영역에서 소위 일가를 이루려면 10년은 해야 한다. 10년은 몰두해야 보인다.”

Q. ‘수요미식회’ ‘알쓸신잡’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책에 “전문가에게는 방송은 매우 위험한 매체”라고 했는데, 방송 출연이 후회된 적은 없나?

“후회한다. 특히 오락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보고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 내가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기 전에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같은 다큐멘터리나 교양 방송에 많이 나갔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방송의 내용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락 프로그램은 내용이 아닌 사람을 기억한다. 그래서 전문가가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서 연예인처럼 유명해지면 대중과 친숙해지는데, 그러면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인지도는 올릴 수 있지만, 자칫 삶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된다.”

[사진=최현식 PD]

Q. 책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대목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어떤 대목인가.

“글을 쓰면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내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다. 근데 1.4후퇴 때 6개월 동안 실종이 됐다. 그때 가족들은 아버지가 전사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근데 부친이 한국전쟁 때 있었던 이야기를 가족에게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경상도 남자가 기본적으로 말수도 적고, 잘 웃지도 않고, 무뚝뚝한 면이 있는데 부친은 그보다 좀 더 심했다. 왜 그랬을까. 혹시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20대 초반에 사람을 죽이고, 동료가 죽는 것을 보는 전쟁을 3년 동안 치른 일이 얼마나 우리 부친의 인생을 참담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우리 부친이 아버지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 불쌍한 거지.”

Q. 책의 마지막 문장이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너무 애쓰지 마시라”이다. 이 문장은 취업을 앞둔 청년 황교익이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말이기도 하다.

“외할머니는 30대에 과부가 됐다. 우리 어머니가 장녀이고, 그 밑에 삼촌이 세 명 있다. 자식 넷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일을 하셨다. 외할머니의 손은 항상 축축했다. 쉬지 않고 계속 무슨 일을 했으니까. 그렇게 평생을 힘들게, 험하게 사셨다. 근데 취업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마라. 다 산다’고 하시더라. 외할머니가 왜 그랬는가. 당신은 그렇게 평생 애만 쓰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왜 했는가. 나는 외할머니의 말을 이제 느끼기 시작한다. 인생이 참 힘들다. 당장 죽을 것 같고,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우고, 직장 내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갈등을 일으키고, 돈 떼이고… 뭐 이런 잡스러운 일들로 가득하다. 이게 순간적으로 힘들긴 하다. 근데 막 악다구니 쓰면서까지 그렇게 했었어야 하는 건가.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지점들이 있다. 상대에게 부드럽게 대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것들이 생각나더라.”

Q. 책을 다 읽고 나면, 맛 칼럼니스트가 전하는 ‘인생의 맛’에 관한 책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당신의 인생은 어떤 음식, 어떤 맛으로 표현할 수 있나?

“내가 원래 지향했던 삶은 물 같은 삶이었다. 아무 냄새도, 맛도 나지 않는 물과 같았으면 했다. 인간이 왜 물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지 아나? 반드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먹어야 하는데 호불호가 강한 맛이면 안 된다. 인간이 먹어야 하는 것 중에 가장 귀하고, 가장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아무 맛이 없다. 나는 물과 같은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너무 지저분하고, 깨지고, 흐트러졌다.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던져지고, 덧칠이 가해졌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 또한 내 인생이다. 남은 인생은 나를 더욱 아끼면서, 맛있게 살 것이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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