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의 주범, ‘먹거리 부족’ 아닌 ‘빈곤’
굶주림의 주범, ‘먹거리 부족’ 아닌 ‘빈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10.20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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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가 더욱 다채롭고 풍족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세계 기아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세계보건기구와 공동으로 펴낸 ‘2021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인구는 7억 2천만 명에서 8억 1천100만 명 사이로 추정된다. 코로나19에 의한 경기 침체가 식량 부족 현상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기아 문제는 비단 식량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환경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농업생태학자 에릭 홀트 히메네스는 책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에서 “문제는 기아가 아니라 빈곤”이라며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은 먹을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가난해서 먹을거리를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농민’이라는 사실이다.

히메네스는 “농민들이 지급받는 만성적인 낮은 농산물 가격, 과도한 수준의 음식 쓰레기, 그리고 식량으로 쓰던 곡물과 오일시드를 사료와 연료로 용도 변경하는 것 모두는 체계적인 과잉생산을 반영한다”며 “거대한 시장 권력을 가진 대규모 산업 농장들은 막대한 잉여를 생산하고 토지와 자원을 독점하면서 이들 소농민을 파산과 기아로 내몰고 있다”고 말한다.

앞선 설명처럼, 기아 문제는 단순히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빈곤, 나아가 권력과 정치경제학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그러니까 먹을거리가 식탁까지 오는 과정에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예를 들어보자. 식품 관련 기업들은 세계경제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이 기아를 종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지구상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먹을거리 생산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메네스에 따르면, 지금도 먹을거리는 충분히 과잉 생산되고 있고, 기아 종식을 위해서 더 많은 생산을 고집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결국 답은 ‘생산’이 아니라 ‘불평등 해소’에 있다.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의 정치권력을 증대시키고, 기아 문제에 관한 지속적인 토론의 장이 마련될 때,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게 히메네스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각종 진보적 사회 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정치적으로 강력하게 연대해 자원 배분 방식을 바꾸는 방법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제 필요한 것은 바로 (엘리트가 아닌) 대다수가 함께 모여 기아를 종식시키고 기후변화를 되돌리고 우리의 정치경제체계를 변혁시키는 데 시급하게 요구되는 전략을 정식화하고 조치를 취해나갈 ‘비판적 공론장’”이라고 말한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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