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탐방⑦] “시인 김종삼을 위해 존재하는 출판사입니다” 도서출판 ‘북치는 소년’
[출판사 탐방⑦] “시인 김종삼을 위해 존재하는 출판사입니다” 도서출판 ‘북치는 소년’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9.27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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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취향이 제각각이듯 출판사도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닙니다. 실용의 가치를 바탕으로 독자의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가하면 문학을 통해 인간의 삶을 깊이 탐구하기도 합니다. 또 페미니즘의 기치 아래 성평등을 도모하기도 합니다. 출판사의 다채로운 이모저모. 그 매력을 집중탐구합니다.
육명심 사진작가가 찍은 김종삼 [사진=북치는 소년 제공]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김종삼 「민간인」) 

 분단 이후 한국인의 삶을 아프도록 실감나게 그려낸 김종삼(1921~1984) 시인.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에 기록됐을 만큼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시를 남겼지만, 정작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출판사 ‘북치는 소년’은 김종삼의 문학 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김종삼의 시는 대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을까. 지난 15일 북치는 소년 이민호 대표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18년부터 출판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이 대표는 “경제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김종삼 때문에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종삼 전공자로서 그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한국 사회에 남겨 놓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청하 출판사와 나남 출판사에서 출간된 두 권의 김종삼 전집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김종삼의 문학 세계를 전부 담아내기에는 부족했다. 전자는 전집보다 선집에 가까웠으며, 후자는 원전 비평이 안 돼 있는 등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북치는 소년의 김종삼 책이 ‘전집’이 아니고 ‘정집’인 이유는 그만큼 시인의 시를 올바르게 모았다는 취지에서였다.

김종삼 정집을 펼쳐 들고 있는 이민호 북치는 소년 대표

그가 김종삼에 반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표는 한길 문학학교에서 김종삼과 만났다고 말했다. 한길 문학학교는 대학 내 문예창작학과가 없었던 90년대 초, 문인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던 문학 사숙이었다. 대학 졸업 전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그는 건설사 사무직 일을 하다 글세계에 정식 입문했다. 문학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우연히 이시영 시인이 수업에 들고 온 김종삼 시 한 편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는 “세상이 김종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당시의 느낌을 밝혔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김종삼과 김춘수, 김수영을 엮은 비교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대표가 김종삼의 시에 매혹된 문인들과 연구자가 만든 ‘종삼 포럼’에 참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종삼 포럼에서 나온 연구 결과는 『김종삼 정집』 출판으로 이어졌다. 정희성 시인을 비롯한 14명의 편찬위원, 그 중에서도 4명이 책임편집(홍승진, 김재현, 홍승희, 이민호)을 맡았다. 1954년 발표된 「돌담」을 비롯해 문예지에서 발표된 모든 시를 실었다. 거기다 독자들이 김종삼을 보다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김종삼의 시 세계에 대한 변화상도 그려넣었다. 책에는 그가 생전 썼던 243편의 시가 모두 담겼다.

일반 대중들을 위한 김종삼 시 선집도 내놓았다. 『김종삼 매혹 시편』이다. 김종삼 정신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42편의 시를 골라 담았다. 이 외에도 『내용 없는 아름다움(캘리그라피로 읽는 김종삼』으로 대중들이 보기에 친근감이 느껴지는 책도 펴냈다. 

북치는 소년이 펴낸 책들

이 대표는 김종삼을 주변인이자 소수자로 표현한다. 김종삼은 반골 기질이 강해서 문단의 중심 인사들과 교류하지 않았다. 북한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나 일본 도요시마 상고를 졸업한 이력을 가진 그를 분단 초기 한국 사회는 결코 친절히 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낮도깨비라는 별명도 있었다. 사람들이 예상하기 힘든 기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신군부가 쳐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다방에 홀로 앉아 음악감상을 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생활비 한번 제대로 갖다주지 않아 무능력한 가장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은 부인할 수 없다. 시인은 분단 상황에서의 인간의 삶을 자신의 시 세계에 가장 중앙에 놓았다. 김종삼 시의 특징을 꼽자면 그 시대의 ‘리얼리즘’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시 「민간인」은 남한과 북한의 경계지역에서 월남인들의 긴장을 전한다. 바다를 통해 남한으로 가려는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밀행을 들켜서는 안 된다. 울음을 터뜨린 갓난아이는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버려진다. 시인은 그 잔혹하고도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을 시에 옮겨 담았다. 

「묵화」에는 혼자 사는 할머니의 고독과 적막한 상황이 홀로 남겨진 소 한 마리와의 교감을 통해 드러난다. 시인은 할머니가 풀먹는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는 장면을 보며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김종삼이) 현실의 문제에 대해 아주 녹아들어가면서 그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우리가 느끼도록 해 준다”고 말했다.  

이민호 북치는 소년 대표

이 대표는 김종삼 정신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두 권의 책을 구상하고 있다. 하나는 김종삼 탄생 100주년 기념 평전이다. 대구, 부산, 일본 등 김종삼이 다녀갔던 행적들을 종합‧정리해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QR코드를 활용해 시와 음악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김종삼 시집이다. 독자가 페이지에 찍힌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그 시에 어울리는 음악을 재생하도록 해 준다. 

이 대표에게 출판사 운영 계획을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단연 ‘김종삼 정신의 확산’이라고 답했다.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구성돼 있는 김종삼의 시를 보고 대중들도 시 짓기를 시작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문제점은 시를 너무나 고답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마치 따로 전문적인 시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며 “시인들은 단순히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대중들도 시인이 될 수 있다. 다만 아직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많은 사람들이 김종삼의 시를 읽으면서 본인도 시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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