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조인 출신 후보들이 강세다. 여당에서는 6명의 예비후보 중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변호사와 판사 출신이다. 야당에서는 윤석열, 홍준표, 최재형 등 유력 후보들이 검찰과 판사 출신이다. 이들은 영역은 다르지만 오랫동안 법전을 곁에 둬 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법조인들은 어떤 사람일까. 누군가를 단죄하고 심판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흔히 차갑고 냉철하다는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윤재윤 변호사(68‧사법 연수원 11기)는 이런 점에서 조금 다르다. 오히려 차갑기보다는 온화한 편이다.
그의 법조 경력은 자그마치 40년이 넘는다. 서울고등법원, 춘천지방법원 등에서 30여 년간 판사 생활을 했고, 퇴임 뒤에는 법무법인 ‘세종’에서 변호사로 10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는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재판정에 선 인간을 탐구해왔다. ‘비행 청소년을 돕는 자원보호자제도’와 ‘양형진술서 제도’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자원보호자제도는 재판에 회부된 비행청소년들을 사회로 돌려보내면서 지역 사회의 자원봉사자와 연결해 이들이 재범을 하지 않게끔 돕는 제도이다. 이런 그가 최근 에세이집 『잊을 수 없는 증인』(나무생각)을 냈다. 책은 재판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회를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책은 어떻게 출간한 건가.
“판사 생활 31년, 그리고 변호사로 10년째 일 하고 있다. 민사 재판, 형사 재판 등 다양한 재판을 경험했다. 재판을 하면서도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늘 품고 살았다. 그런데 재판에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더라. 심지어 사형수나 상습 범죄자 등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원래 글을 써 본적은 없다. 부장판사가 된 뒤 청소년 팸플릿, 월간 에세이 등에서 원고 청탁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내 속에 있었던, 그리고 풀리지 않아 막연하게 놓여있던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글들을 모아 첫 수필집을 낸 적이 있다.
판사 생활을 접고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는 너무 바빠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책은 절판된 첫 번째 수필집을 다시 다듬고 새 얘기들을 넣어 만든 것이다.”
- 판사 생활과 변호사 생활은 많이 다른가.
“굉장히 다르다. 판사는 양쪽의 입장을 다 듣고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판사들에게 올라오는 자료들은 대부분 정리된 자료들이다. 반면 변호사는 한쪽 편 얘기를 많이 듣게 되고, 날 것 그대로의 사건을 만나게 된다.
변호사 생활 3개월 차에 판사가 어떤 존재인지 알겠더라. 옛날에 미 연수를 간 적 있는데 미국에서 한국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됐다. 유럽에 가면서는 미국이 보였다. 밖으로 나와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판사 생활 30년 넘게 했는데 변호사 생활 3개월 하니 더 잘 보였다.”
- 변호사 생활하면서 본 판사는 어떤 존재인가.
“요즘 변호사를 거쳐 판사로 가는 후배들이 많다. 그들에게 내가 전하는 말은 ‘네가 판사를 하면서 사회를 위해 좋은 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 ‘판사로서 정말 옳은 판결을 하나 더 하는 게 이 사회를 위하는 길이다’라고 조언한다.”
- 어떤 이유인가.
“우리나라 판사들은 일이 너무 많다. 그리고 업무에 있어서 피상적이다. 판사가 시간이 없어서 현장 검증 하러 가는 경우는 1%도 안 된다. 모든 사건을 다 현장 가보면 알 텐데 불가능하다. 판결한다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고, 변호사를 해보니까 부족한 판결이 많이 나온다는 걸 보게 된다. 아주 쉬운 판결들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조금만 사건이 어려워지면 지혜롭게 판정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 윤 변호사를 두고 ‘휴머니즘 법조인’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다.
“판사 시절 ‘치유적 사법’이라는 개념에 대해 관심 갖고, 또 여러 차례 주장하기도 했다. 판결을 통해 엄벌을 내리고, 또 엄격하게 판단하는 것만이 궁극적인 판사의 일은 아니다. 범죄자가 재범에 빠지지 않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가정법원 판사 시절 비행청소년을 돕는 자원보호자제도를 만든 적이 있다. 20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형사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재판정에 서는 아이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먼저 친구 따라서 어쩌다 실수를 한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그냥 놔둬도 된다. 하지만 제대로 못 자라고 가정에 불화가 있어 (마음에) 병이 든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개선되기 힘들다. 그리고 나머지 세 번째는 어느 쪽으로 갈지 모르는 아이들이다. 잘 이끌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잘못되면 아주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들을 재판에서 용서하고 집에 돌려 보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부모님도 맞벌이 나가거나 해서 봐줄 기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들에게 동네에서 훌륭한 어른이라고 평가받는 자원봉사자 분들을 찾아 연결해주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 밥 사주고 얘기를 들어주는 상담 형식이다. 같은 재판이라도 상처가 되는 재판보다는 치유할 수 있는 재판이 되게 하자는 취지였다. 온전히 내 아이디어는 아니고, 미국 같은 곳에서는 오래전부터 진행하고 있다.”
- 법조인들의 정계 진출이 잦다, 생각이 어떠한가.
“나하곤 전혀 맞지 않는다. 워낙 소심하기도 하고, 사람에 대해서 아주 복잡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 친구들이나 선후배 가운데 정치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런 생각이 절대 들지 않았다.”
- 30년간 재판을 맡았는데 나름의 통찰도 있겠다.
“판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신의 대리인이다. 그런데 ‘매우 불완전한’ 대리인이다. 그리고 법률이라는 것은 시대의 한 시점과 그 사회에서의 합리성의 총합이다. 그리고 성실하고 건전한 사람들이 판사라는 직분을 맡아서 결론을 내려주는 게 판결이다. 하지만 법률도 굉장히 불완전하고, 판사 또한 확증편향을 피할 수 없다. 누구나 편견이 있다. 내 관점에서는 참 불완전한 사람들이 불완전한 법률을 갖고 판결을 한다는 생각이다. 아주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판결해야 한다.”
- 가끔 재판 중에 잘못된 판결이 나오기도 하는 걸 보기도 한다.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AI 판사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현재까지의 AI는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 판단한다 것도 힘든 일이다. 판사는 재판에 필요한 기록이나 증거를 잘 들여다 봐야 한다. 같은 기록과 증거를 보더라도 하나만 보는 게 아니고 여러 개를 복합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람이 많은 시간을 투입해서 진지하게 봐야 한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주체는 판결할 수 없다. 희로애락과 그 이면에 있는 깊은 어떤 것을 느낄 줄 아는 주체가 판결을 해야 한다.”
- 치유적 사법을 주장했지만 갱생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그건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다. 인생이 완전히 파괴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건 본인의 잘못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구타 속에서 자랐다. 결손 가정이 돼서 제대로 된 양육과 교육을 못 받는 사람들도 있다. 상습범들은 가족도 없어서 연락하기도 힘들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극도의 상처를 받고 위축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왜곡된 시선으로 사회를 본다. 이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는 답이 없다. 미국은 국민 대비 감옥 수용사 재소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안은 ‘격리’이다. 감옥을 많이 만들어서 상습범들이 사회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 어떻게 해야 할까.
“근본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해야 할 역할이다. 조금이라도 사회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의 비율을 줄여야 한다. 제일 시급한 게 부부교육과 가정 교육이다. 새로 결혼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
- 책에 법이 눈물을 닦아주기는 어렵지만 눈물의 현장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적었다.
“재판에서, 특히 형사재판에서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일어난다. 정말이지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처절한 삶이 너무 많다. 아내가 아파서 병원비 때문에 밤일하다 운전 중에 졸아서 사람을 죽인 남편, 처벌을 강하게 하자니 병든 아내와 생계에 문제가 생기고, 약하게 하면 죽은 사람이 억울하다. 법정이 눈물의 현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무죄는 정말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서울 고등법원에 있을 때 어느 지역 군수가 뇌물죄로 구속돼 올라온 적이 있다. 굉장히 억울하다고 호소했는데 조사와 심리를 끝까지 해봐도 유죄였다. 그래서 항소 기각했더니 그 군수의 딸이 ”우리 아빠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고 통곡하고, 결국에는 쓰러졌다. 나는 그가 정말 돈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 증거에 의해서는 유죄가 될 수밖에 없다.
강원랜드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 직원을 성추행했다며 1심에서 구속돼 온 적 있다. 재판해보니까 남자가 그 방에 잘못 들어간 것이었다. 술 취해서였다. 그랬더니 (여자의) 어머니가 통곡을 했다. 나는 그때 그 고소한 피해자 여성에게 ‘무죄라고 해서 당신이 거짓 고소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피고인인 남자에 대해서는 ‘당신이 잘못했으며, 여자에 대해서는 원망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무죄라는 판결은 인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내리는 것이다. 합리적 의심이 전혀 없을 경우에만 유죄 판결을 한다. 그러니까 결국 무죄 받았다는 게 깨끗하다는 뜻은 아니다. 증거 부족 문제 등 인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죄라고 단정할 수 없으니까 나오는 것이다.”
- 재판에서 숱한 갈등을 지켜봤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도 있었을 것 같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다. 누구나 똑같이 연약하고 어두운 면이 있다. 숨겨진 죄와 약점이 존재한다. 나는 누가 사회적으로 뛰어나다거나 훌륭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본질적으로는 약하기 마련이니까.
그런 한편으로 인간에게 놀라운 자기 회복력이 있다는 걸 봤다. 표제 단편인 「잊을 수 없는 증인」에 등장하는 사례이다. 남편과 아내 간에 벌어진 소송이 있었다. 부부는 문방구를 운영했다. 슬하에 딸 둘을 낳아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남편이 신부전증에 걸리고, 척수염을 갖고 있던 아내도 증세가 심해졌다. 아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술 학원에 다니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으나, 남편은 그 반대였다. 남편이 두 딸과 함께 독극물을 마셨다. 두 딸은 절명했지만, 남편은 간신히 살았다.
딸들이 자신처럼 비참한 삶을 살 바에야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낫겠다는 남편의 판단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딸들을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 재판부에 ‘정당한’ 판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남편에게 가벼운 형을 주어 한 번이라도 사람답게 살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배려해서 내린 선택이었음을 생각해서 나온 행동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 아내분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고 몸도 불편했지만 그 정신만큼은 엄청났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존재 안에는 한편으로 연약함이 있는 동시에 회복력이 있다. 이 약함과 회복력 사이에 계속 씨름을 해나가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책 서문에 오스트리아 철학자 마틴 부버의 말을 인용했다. 내용인 즉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는 연약한 존재지만 계속 씨름을 해 나가는 인간에게 더 애정을 갖는다.”
- 양형 진술서 제도를 만든 것은 판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나.
“사람을 살해한 강도가 자신의 범죄에 대해 자백을 했다고 치자. 강도 살인에 대해 법정 형이 5년부터 무기징역, 사형까지 있다. 판사는 이 사람에게 법률상으로 어떤 형을 내리는 게 맞을지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형을 내리려면 이 사람에 대한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경찰서에서 학교, 주소, 가족 등을 기재해 놓은 서너 줄 되는 한 페이지 문서 밖에 없다. 이런 양식으로 어떻게 형량을 정하나, 말이 안 된다. 그래서 5~6장 되는 양형 진술서 양식을 만들어서 가정 환경과 성장 과정 등을 자세히 적으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가 이때까지 형식적인 재판을 한거다. 나는 이것을 법관으로서 잘한 일 중에 하나로 꼽는다.
- 어떤 독서 생활을 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잡탕독서 스타일이다. 2~30대 시절에는 추리 소설을 많이 봤다. 셜록홈즈부터 시작해서 캔 폴릿까지. 40대 넘어서는 철이 들면서 인간에 관한 심리와 종교, 역사 쪽으로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60이 넘어가니까 고전을 보고 싶어지더라. 부끄럽지만 얼마 전에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처음 봤다. 또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마어마한 소설을 보려고 하는데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서 얻는 재미가 적어 가성비가 안 나온다. 그 점은 반성하고 있다.”
- 이번 책 『잊을 수 없는 증인』과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이 있다면.
“이 책이 재판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느 특별한 법률 서적보다 인간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다 어울릴 거라는 생각을 한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