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독서인권] 장애인용 전자자료 납본, 해묵은 갈등 이제 끝내자
[특별기획-독서인권] 장애인용 전자자료 납본, 해묵은 갈등 이제 끝내자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8.1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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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표된 저작물은 시각장애인 등을 위하여 점자로 복제ㆍ배포할 수 있다’ -저작권법 제33조(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복제 등) 1항

‘시각장애인 등의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해당 시설의 장을 포함한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시각장애인 등의 이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공표된 어문저작물을 녹음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전용 기록방식으로 복제ㆍ배포 또는 전송할 수 있다.’ -저작권법 제33조(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복제 등) 2항

현행 저작권법(제33조)은 시각장애인용 대체도서 제작 시 장애인 단체나 기관에서 출판물을 공공의 목적으로 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도서관법 제20조(도서관자료를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디지털 파일 형태로도 납본하여야 한다)에 따라 각 출판사로부터 제공된 전자 자료를 시각장애인용 도서 변환에 활용할 수 있다.

관련 규정만 놓고 보면 시각장애인의 독서할 권리와 정보접근성은 보장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저작권법 제33조 2항이나 도서관법 20조는 전자 자료를 납본하지 않은 출판사에 강제적 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조항이 없다. 이런 이유로 2020년 기준 출판사들의 자발적인 전자 자료 납본율은 23.98%에 머물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 제작은 주로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 출판사가 전자 파일을 제공해 주면 장애인들은 비교적 빠르게 점자 도서를 받아볼 수 있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의 경우 출판사가 장애인용 데이터 자료를 납본하면 정가의 몇배에 상응하는 비용을 저작권료로 지불한다. 값은 아래한글, PDF, 인디자인 파일 순으로 매겨진다. 하지만 출판사들은 여전히 데이터 자료 납본을 꺼린다. 국립장애인도서관 관계자는 “출판사에 요청하면 ‘원본 데이터를 가져간다는 건 소유권을 박탈하는 행위’ ‘저자가 거부한다’ 등의 답변을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물론 출판사 탓만 할 수는 없다. 출판계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원본파일 제공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편이다. 출판사에서 파일을 넘겨주게 되면 시간, 비용 등 대체도서 제작 과정에서 얻게 될 편리함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보다는 원본 데이터를 제공하려는 출판사도 늘고 있다. 국립장애인도서관만 국한해 놓고 보면 도서 디지털 파일 납본율은 2019년 36.8%에서, 2020년 54.3%, 그리고 2021년 현재 57.4%로 증가 추세다.

장애인의 정보접근권과 저작권 보호 논리는 해묵은 현안이다. 1986년부터 저작권법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규정을 마련한 이후 여러차례 개정 과정이 있었지만, 장애계의 입장에서 만족할만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출판계는 디지털 자료 미 제출 시 제제를 가하는 것보다 무단 배포 문제 발생 시 출판사들의 피해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계에서는 장애인들의 도서 접근성을 위해 출판사들의 인식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일호 연세대 교수는 “(출판사들에게 도서 제출 납본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강제적인 방법보다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며 “처음부터 저작자, 출판사가 장애인용 책을 함께 기획한다든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읽을 수 있는 책을 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다”고 전했다. 김영일 조선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데이터가 시각장애인에 의해 무단 복제 된 적 없었으며, 원본 파일의 형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 유출에 대한 걱정은 기우”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미국 비영리민간단체 베네텍이 만든 ‘북쉐어 온라인도서관’은 시각장애인 독서를 위한 시스템으로 호평을 받는다. 미 출판사와 저자들은 매월 500종의 신간 도서 원본 파일을 이 온라인도서관에 기증하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이 장애인 정보접근권 문제에 있어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며. “물론 미국이라고 모든 측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법원이든 정부든 관련 문제에 있어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이것이 권리자에게도 ‘이 문제만큼은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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