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강경화, 정우성, 최태성이 추천하는 책 『당신의 수식어』
[책 속 명문장] 강경화, 정우성, 최태성이 추천하는 책 『당신의 수식어』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1.08.12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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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나는 가방에 있던 소형 카메라를 꺼내 이 순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어 자료들을 읽지 못해 아쉬웠지만 사진을 통해 본 헤로니모라는 인물의 신비함에 끌리기 시작했다. 쿠바 혁명가인데 후에는 한인들을 위해 여생을 바친 인물이라니…. 젊은 시절의 그는 분명 늠름하고 멋지고 낭만적으로 보였다. 나이 든 그의 얼굴 깊은 주름 속에는 말 못 할 고민의 흔적과 따뜻한 인자함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어눌한 영어 설명이 사진과 합쳐지며 내 가슴에 하나의 불씨가 지펴졌다.<30~31쪽>

소수가 되는 경험을 해 본 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수가 정해 놓은 편견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의식적으로 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정체성이라는 화두는 다수와 주류의 담론이 아닌 소수자들의 담론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변두리, 경계인, 소수자들이 자아를 인식하는 중요한 기제이고 주류와 다수에게 자신의 존재를 묻고 드러내는 행위이다.<79쪽>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형태의 조국을 꿈꾸었던 헤로니모 선생을 미지의 세계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나는 큰 희열을 느꼈다.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한인 디아스포라들의 이중, 다중적인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100퍼센트 쿠바인이자 100퍼센트 한인, 그 이상의 세계 시민성을 갖춘 헤로니모 선생의 모습에서 디아스포라가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와 이상을 보았던 것이다.<130쪽>

내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 마음의 목소리였다. 내게는 「헤로니모」 프로젝트가 그 어떤 성공적 커리어보다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성공의 트랙에서 이미 벗어난 자유로움이 있었다. 성공의 딜레마가 아닌 실패의 자유가 있었기에 「헤로니모」를 보다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197쪽>

순진무구한 몽상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가설, 가슴 뛰는 상상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현실적 기능의 차원이 아니라 정체된 현재에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는 차원에서 디아스포라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헤로니모」를 따라간 이 책의 여정을 통해 아주 조금이라도 우리의 세계관이 확장될 수 있었다면, 새로운 상상력의 작은 씨앗이 심어졌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230쪽>

[정리=전진호 기자]

『당신의 수식어』
전후석 지음 | 창비교육 펴냄 | 240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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