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심훈의 『상록수』
[문학기행 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심훈의 『상록수』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7.2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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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글을 읽고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 상상을 실제 상황과 맞춰보는 것은 또다른 재미이지요. 저자가 처했던 상황, 시대 배경 등에 대한 이해는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됩니다. <독서신문>이 근현대 문학 배경지를 찾는 기행을 시작합니다.

■ 시리즈 기사 연재 순서
“누가 나라를 뺏기라고 했나”... 문학기행 ① – 조정래의 『아리랑』
“생명의 땅 평사리는 인간의 탐욕을 나무라지만”... 문학기행 ② – 박경리의 『토지』
“쓸모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다”… 문학기행 ③ – 조두진의 『북성로의 밤』
“절대 고독에서 만난 반가움과 사랑” 문학기행 ④ – 변경섭의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린다』

[사진=플랫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밤 하늘을 나르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심훈 「그날이 오면」

기지시정류장 [사진=플랫컴]

오매불망 조국의 독립을 갈망했지만 광복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1936년 서른다섯에 숨을 거뒀다. 광명의 그 날을 목도하진 못했지만 조국을 위해 살다간 그의 업적과 문학적 업적은 그의 대표작 『상록수』처럼 늘 푸르게 기억되고 있다. 그런 그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상록수』가 탄생한 충남 당진 심훈기념관으로 향했다. 당진으로 향하기 위해 일단 교통편부터 검색했다. KTX가 닿지 않는 곳이기에 기차를 이용하려면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평택역(약 1시간 소요)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야 했다. 아니면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당진버스터미널로 가거나,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당진 내 기지시정류장으로 향해야 했다. 3시간이 넘는 코스였지만 기차보다 상대적으로 소요 시간이 짧은 버스를 택했다.

심훈은 경성고등학교 재학중 3.1운동에 참여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사진=플랫컴]

심훈 기념관은 심훈의 삶과 항일, 문학적 업적을 종합적으로 전시한다. 작가, 시인, 영화감독, 아나운서, 농촌계몽운동가로 살다 간 심훈(본명 심대섭)은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현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나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한다. 학생 가담자의 경우 (일본 입장에서) 불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풀어줬지만 심훈은 “내 목이 잘려도 독립운동을 할 것”이라고 강경한 자세를 취하면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는다. 이 일로 그는 학교에서는 퇴학당한다.

[사진=플랫컴]

이후 국어국문학자 이희승에게 문학을 배우다가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중국으로 유학길에 나선다. 참고로 심훈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검은 뿔테 안경은 눈이 나빠서가 아니라 변장하면서 사용했던 것이 몸에 배어 이후에도 줄곧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으로 넘어간 심훈은 항주 지강(之江)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많은 우국지사들과 연을 맺는데, 이때 석오 이동녕, 성제 이시영, 단재 신채호 등을 만난다.

『상록수』는 1935년 9월 10일부터 10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총 127회가 연재됐다 [사진=플랫컴] 

귀국 후 1926년부터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시 「그날이 오면」 소설 『동방의 애인』 『불사조』 등의 출간을 시도하지만 일제의 검열로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한다. 심훈과 관련해선 흥미로운 일화들이 전해지는데, 무엇보다 ‘객기’가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걸어가다 일본 순사의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고 모른 척을 하거나, 파출소 입구를 지키는 순사의 모자를 빼앗아 달아나기도 했다. 이유를 묻는 친구들에게 단순히 “골려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심훈은 1932년(당시 32세) 부모님이 계신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필경사를 짓고 집필에 매진한다. 필경사는 ‘붓으로 농사를 짓는다’라는 뜻이다. [사진=플랫컴]

언론사를 전전했으나 정착하지 못한 심훈은 1932년(당시 32세) 부모님이 계신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필경사를 짓고 집필에 매진한다. 필경사는 ‘붓으로 농사를 짓는다’라는 뜻으로, 이때 심훈은 장편소설 『상록수』를 수확한다. 이광수의 장편소설 『흙』과 더불어 농촌계몽 운동의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1930년대 당시 지식인의 관념적 농촌운동과 일제의 경제 침탈 상황 등을 고발·비판하면서 문학이 취할 수 있는 현실 정세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기념관 마당에 전시된 박동혁과 최영신의 조형물
기념관 마당에 전시된 박동혁과 채영신의 조형물 [사진=플랫컴]

농촌계몽운동에 뜻을 품은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상록수』의 주인공은 잘 알려졌다시피 실존 인물이다. 작중 박동혁은 심훈의 장조카 심재영으로 1930~1941년까지 공동경작회를 조직해 농사개량, 금주, 단연,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 그는 “숙부님(심훈)은 우리 공동경작회원들과 농촌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수첩에 빼곡이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전했다.

작중 채영신의 실제 인물 최용신은 현 경기 안산시 본오동에서 예배당을 빌려 민중 계몽에 힘썼다. 다만 과로에 따른 건강 악화로 1935년 26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만일 제가 떠난 후라도 학원만은 여러분의 손으로 훌륭하게 살려주세요... 제가 죽은 후에는 학원이 잘 보이고 종소리가 잘 들리는 곳에 묻어주세요”라고 유언을 남겼다. 작중에서 남녀차별에 대항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농촌계몽운동 사업 발표회를 진행하는 대목에서 영신은 사회자가 여성으로서 이뤄낸 업적을 치켜세우자 “이런 자리에까지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지 모르지만”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버스에서 동혁이 영신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연약한 여자라고 자리를 사양하는, 그런 대우가 받기 싫어서 굳이 앉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기념관에 심겨진 4종의 상록수, 사진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향나무, 사철나무, 소나무, 전나무 [사진=플랫컴]

기념관 밖에는 과거 필경사를 재연해 놓은 건축물과 동혁과 영신의 동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또한 네 종류(사철나무·향나무·전나무·소나무)의 상록수가 관람객을 맞는데, 이를 찾는 것 또한 색다른 재미다.

심훈기념관, 균열로 물일 새는 관계로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심훈기념관, 균열로 물이 새는 관계로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사진=플랫컴]

본래 기념관 건물 위층에는 심훈 동상이 자리하지만, 방문했을 당시 무게 과중에 따른 결로 현상으로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 자세히 살펴볼 수 없었다. 기념관 관계자는 “옥상 내 조형물이 늘면서 하중이 실려 자꾸 물이 새는 바람에 보수공사 중”이라며 “이달 중에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을 목놓아 외쳤던 우국지사들의 헌신에 비로소 광복 76주년을 맞은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꿈꾸어야 할 ‘그날’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당진은?
705.42㎢의 면적에 2읍 9면 3동으로 이뤄졌으며, 인구는 16만6,333명이다. 과거 신라 시대에 당나라와 교역하던 항구가 위치했다 해서 당진이라 불린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2012년 시로 승격된 후 꾸준히 인구가 늘었지만, 현재는 정체기를 맞은 상황이다.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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