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이쯤되면 열풍이다.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 조던 피터슨(59)의 『질서 너머』(웅진 지식하우스)와 유튜버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의 『올바름이라는 착각』(데이포미)을 두고 출판계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지난 3월 초판 1쇄를 발행했던 『질서 너머』는 벌써 11쇄를 넘기면서 8만4000부를 판매했다. 『올바름이라는 착각』은 지난달 출간됐지만 2만여부가 넘게 팔렸다. 두 책의 주요 소비자는 젊은 남성이다. 서점가의 주 소비자가 동 연령대 여성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두 책의 인기는 최근 벌어지는 ‘이대남’들의 분노와 맥이 닿아있다. 4‧7 재보궐 선거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선 과정에서 드러난 이대남들의 역차별심리에 대한 공감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질서 너머』는 언뜻 보면 평범한 ‘자기 계발서’처럼 보인다. 저자인 피터슨이 1년간 병상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느낀 인문학적 깨달음을 12가지로 정리했다. 책의 주요 메시지는 ‘사회를 탓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더욱 갈고 닦아라’라는 말로 귀결된다. ‘치열한 경쟁과 계층 구조는 자본주의가 아닌 자연의 순리’ ‘능력에 기반한 위계구조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 ‘불평등을 없앨 수 있는 만능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등 능력주의적 관점에서 얘기를 펼친다. 독자중에는 피터슨의 말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노력과 책임의 필요성이 더욱 돋보이게 되고, 이는 다시 자기계발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피터슨은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인 젠더 문제에도 불을 지핀다. 그는 ‘자본주의’ ‘생태주의’ 등이 개인이 갖고 있는 불행의 원인을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본질인 것처럼 호도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페미니즘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컨대 한 여성이 취업난을 겪는 배경에는 개인의 능력 부족, 경쟁자의 능력, 특정 직업군의 상황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데, 이를 페미니즘 담론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않다는 것이다. 피터슨은 “‘가부장제와 싸운다’, ‘평등을 장려한다’ 따위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며 그런 이데올로기를 버리라고 조언한다.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이하 유읽남)의 『올바름이라는 착각』은 이러한 피터슨의 논변을 차용하면서 남성성은 본래 자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피터슨의 영상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고 고백한다.
유읽남은 “경쟁심과 승부욕은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이러한 본능을 갖고 있는 남성이 권력을 차지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는 “기술의 발전으로 건장한 남성을 필요로 하던 노동은 사라지고 있으며, 가부장제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남녀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정치적 올바름 논의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그는 “오늘날 젊은 남성은 그들이 정작 가져본 적 없는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이상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유읽남의 이런 논법은 페미는 숭고한 진보적 가치가 아니라 불공정을 대표하는 단어로 읽힌다.
‘이대남’은 왜 조던 피터슨이나 유읽남을 찾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가부장제와 남성성을 비판하는 페미니즘에 불편함을 느낀 남성들이 자신들 입장의 대변자로 조던 피터슨을 찾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으로 부상하면서 이른바 ‘이대남’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모든 이론과 운동은 토론과 논쟁을 거치면서 정교해지고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게 되는 만큼, 페미니즘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진단은 피터슨 현상이 여성을 타깃으로 한 왜곡된 형태의 불만일 수 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허 평론가는 유튜브에 떠도는 일부 피터슨 영상의 소비 방식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일부 피터슨 영상의 과격한 지지 댓글에서 볼 수 있듯, 피터슨 영상이 여성 및 소수자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용되는 배타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과 논쟁의 전후 맥락을 자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이 유통되고, 이에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며 편을 나누는 방식은 젠더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