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 칼럼] 투자 만능시대, 나는 무사한가
[박용채 칼럼] 투자 만능시대, 나는 무사한가
  • 박용채 편집주간
  • 승인 2021.07.0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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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채 편집주간
박용채 편집주간

21세기가 5분의 1이 지났다. ‘밀레니엄의 희망’을 얘기했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21세기 초반은 혼돈스럽게 지나가고 있다. 사스(2002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 그리고 코로나19(2020년). 시차를 두고 반복되는 팬데믹에 사람들은 피곤하다.  

팬데믹은 기존의 질서를 흐트려놨다. 선진국으로 여겨졌던 미국이나 유럽은 '공동의 이익'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면서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반면 한국민들은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의 이익쪽으로 국민들 시선이 모아지면서 힘겨웠지만 상대적으로 나은 시간을 지내왔다. 최근들어 백신접종이 늘면서 금방이라도 팬데믹이 종결될 듯 얘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낙관적 전망’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랫동안 지치고 힘들어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믿고 싶은' 얘기이기도 하다.

관점을 바꿔보자. 팬데믹의 흐름 속에 추웠던 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업종 종사자,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 일용직들의 하루하루가 버거웠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 반대편에는 대박을 터트린 이들도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영끌의 부동산, 빚투의 주식과 코인 광풍도 있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과거 투자 열풍은 여윳돈 가진 사람들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올 상반기 도서판매중 1등은 재테크 관련 책들이다. 공중파 TV에 재테크 프로그램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시민들에게 투자는 일상이 됐다. 야당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가상화폐 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이다. 투자가 경제 관념을 재는 바로미터로 작동되고, 필수적인 경제활동이 된 시대가 된 셈이다.

사람들이 투자하는 까닭은 뭘까. 남들이 다 해서? 벼락 거지가 될 수 없어서? 설명은 달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제 투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처럼 여겨진다. 실제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런 의심 없이 투자에 몰두한다.

투자로 보상을 얻게 되면 지금보다 나은 삶이 될까. 그래서 행복해질까. 한발 물러나 생각해 보자. 통상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특정 금융상품을 거품 물고 선전한 뒤 말미에 ‘투자는 본인 책임’이라고 슬쩍 발을 뺀다. 영끌에 빚투를 종용한 뒤 ‘잘못되면 네 책임’이라며 최소한의 면피구멍을 만들어놓고 빠져나가는 행태에 헛웃음이 나온다.

한발 더 들어가 보자.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투자는 스스로 우러나서 하는 것을까. 인류학자 하다스 바이스의 말을 빌리면 자본에 투자하는 행위는 결코 ‘자기 결정적’이지 않다. 투자 권유 광고가 넘쳐나면서 뭔가 하지않으면 손해볼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실제 금융사는 목청껏 투자를 홍보한다. 금리가 낮으니 은행에 돈을 넣어 손해 보지 말고 금융 자본에 넣어 한몫 잡으라고 종용한다. 언론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부동산값 폭등을 다룬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고서는 어렵다. 투자를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벼락 거지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고, 투자자들에게는 지속적인 불안정을 안겨주면서 투자에서 손을 뗄 수 없도록 만든다. 이게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이다.

투자에 함몰되면 사회의 중요한 가치나 공동의 이익보다는 내가 투자한 곳의 이익에 더 치중하고 사적 이익만 몰두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종국적으로 공동체를 왜곡시키고 개인을 옥죄는 역할을 한다. 투자는 제로섬게임이다. 늘 이기는 투자는 없다. 모두가 정점을 향하지만 누군가는 미끌어진다. 설령 정점을 찍더라도 거품은 터진다. 금융자본주의의 민낯과 구조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보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명약해진다. 시지프스의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것인지 여부는 온전히 자신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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