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의 『서유견문』, "파리의 청초·화려함은 런던·뉴욕에 비해…"
유길준의 『서유견문』, "파리의 청초·화려함은 런던·뉴욕에 비해…"
  • 황현탁
  • 승인 2021.07.02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⑰]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황현탁
황현탁

⑯ “여행이 끝나지 않길 바랄 때도 있지만, 멈출 터널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⑮ “어진 이는 사람에게 말(言)을 주지만...” 명나라 사신 동월의 『조선부』
⑭ “명석한 사람은 많아도, 너그러운 사람은 적다”... 신유한의 『해유록』
⑬ “예술이라는 하늘에는 새 별들이 계속 나타난다"-괴테의 『이탈리아 여행』
⑫ “평화와 재치, 정직은 절대 양보 못하는 가치”-마거릿 캐번디시의 『불타는 세계』
⑪ 명나라에 조선선비역량 뽐낸 조선관리... 최부의 『표해록』
⑩ “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⑨ “사랑을 위해서는 불속에도 뛰어들겠다” 아이헨도르프의 『어느 건달의 방랑기』
⑧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1895년에 간행된 유길준의 국한문혼용체 『서유견문』(西遊見聞)은 ‘서양문물계몽서’다. 그는 서문에서 ‘구미 여러 나라들과 수교하면서 그들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펴보게 하기 위하여, 여러 해 동안 듣고 본 사실과 힘들여 배운 것들을 얼버무려 꾸며 놓은 것’이라고 밝힌다.

유길준은 26세이던 1881년 4월 신사유람단(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바로 귀국하지 않고 게이오대학(慶應義塾)에서 국비유학을 하게 된다. 그는 임오군란(1882.6.9)이 평정된 후 일본을 방문한 민영익을 만나 유학을 중단한 후 1883년 1월 그를 따라 귀국한다. 1882년에는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인 1883년에 초대미국공사가 부임하자 답례로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하였는데, 유길준은 전권대신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미국방문길에 오른다(9월 미국 도착). 민영익 등은 유럽을 거쳐 귀국하지만 그는 미국 정부 유학생 자격으로 체류하게 된다. 그러나 갑신정변(1884.12.4)이 실패하자 유럽을 거쳐 1885년 12월 귀국하는데 주모자 김옥균, 박영효 등과의 친분 관계를 이유로 한규설의 집에 가택 연금된다.

가택연금 도중 그는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 듣고 보고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유견문』을 집필하여 1890년 초고를 고종에게 바친다. 1892년 가택연금이 해제되고 1894년 갑오개혁이 단행되자 유길준은 친일내각(내무협판, 차관)에 참여해 일본 보빙사인 의화군 이 강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서유견문』 출판을 의뢰, 1895년 일본에서 책을 펴낸다. 을미사변(1895.10.8)으로 내부대신이 되어 사건 수습을 하다가, 아관파천(1896.2.11.)으로 친일 내각이 붕괴하자 일본으로 망명한다. 1907년 고종이 폐위된 후 귀국한다.

그는 수구파와 개화파가 대립하던 격랑의 정국에서 개화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는데, 『서유견문』에는 외세(청국)로부터의 독립, 국민주권, 천부인권 등 서구의 계몽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개혁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서유견문』은 ‘서(序)’와 ‘비고’ 외에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1~2편은 세계지리, 3~17편은 서양의 정치 행정, 조세·교육·화폐 제도, 사회·복지·경제 제도, 과학·기술 등을, 19~20편은 서양 8개국 37개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 14편의 ‘개화의 등급’에서 “개화란 인간 세상의 천만 가지 사물이 지극히 선하고도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며 “사람들의 재주와 능력 정도에 따라, 국민들의 습속과 나라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개화하는 나라, 반쯤 개화한 나라, 아직 개화하지 않은 나라의 세 가지 등급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의 조선이 어느 등급에 해당하는 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개혁파 일원으로 애썼던’ 그의 전력으로 볼 때 ‘개화하지 않은 나라’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각 나라나 지방의 풍습이나 제도, 문화가 다 여행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17편에는 병원, 교도소 등 사회복지시설과 도서관, 대중강연회, 신문 등 문화기관이나 미디어도 소개하고 있다. 18편에서는 여행과 관련되는 기차, 기선, 통신 등 과학 기술발달에 따른 생활의 변화도 기술하고 있다.

『서유견문』 중 직접적으로 여행을 다루고 있는 것은 19편의 미국·영국 12개 도시와 20편의 프랑스·독일·네덜란드·포르투갈·스페인·벨기에 25개 도시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여러 도시를 소개하는 내용 중에는 방문 소감이 포함된 곳도 있고 간략히 개황만 소개한 곳도 있는데, 기술된 내용도 도시마다 일정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 뉴욕, 필라델피아, 시카고, 보스턴, 샌프란시스코를 소개하고 있다. 주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대통령관저에 경비하는 사람이 없다’ ‘워싱턴기념비가 벼락을 맞았다.벼락은 죄 있는 자를 다스리는 천벌로 워싱턴이 생전이나 사후에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그 비석에 천벌이 내렸던가’ ‘뉴욕의 철로가 창문높이와 같아 차 바퀴소리가 요란해 잠자는데 방해가 된다’ ‘센트럴파크 부지는 시민들이 공동으로 갹출한 돈으로 사들였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독립전쟁 때 프랑스가 많이 도와 큰 공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 사람들이 축하와 우의의 표시로 기증했다’ ‘필라델피아는 면직과 모직을 생산하여 유럽 상표를 붙여 수출하는데, 내수판매에서 수입품으로 인정하여 곱절을 받는다’ ‘필라델피아의 조폐국 건물이 크고 화려하다’ ‘시카고는 물이 깨끗하지 못해 우물을 파지 않고 미시간 호의 물을 끌어 쓴다’ ‘샌프란시스코 팔레스호텔은 3,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아래층에 가게를 내 물건도 판매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청나라 사람들이 이주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등등이다.

영국은 런던, 리버풀, 맨체스터, 글래스고, 에든버러, 더블린을 소개하고 있다. ‘런던의 공중과 지하를 달리는 기차 바퀴소리, 큰길 위의 말발굽, 차바퀴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런던 시내에 빈민이 많다(세상에 런던처럼 부유한 곳도 없고 가난한 곳도 없다)’ ‘1851년 만국박람회장인 수정궁은 세계의 온갖 물건들을 수집해 지척의 땅에서 천만리를 여행하는 셈이며 건물 한쪽에 가게가 있어 시내 한가운데를 걷는 것과 같다’ ‘영국박물관은 진열품이 많은 것으로 전 유럽에 떨치고 있다’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에서 수입하는 면직물 가운데 맨체스터에서 오는 것이 많다’ ‘맨체스터 감옥은 자기 허물을 스스로 뉘우치도록 도서실을 만들어 놓았고 공장에서 일하고 임금을 저축하도록 하여 출옥할 때 새 출발 밑천을 삼게 한다’ ‘기차로 글래스고를 향하다 보면 푸른 봉우리들이 병풍의 그림 같고 검푸른 산봉우리들이 하늘에 맞닿은 푸른 파도와 명멸하여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간다’는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

프랑스는 파리, 베르사유, 마르세유, 리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파리 도로의 청초함과 가옥의 화려함이 세계 으뜸으로 런던처럼 웅장하거나 뉴욕처럼 부유한 도시도 파리에는 사흘거리쯤 뒤떨어진다’ ‘파리는 유행(時體)의 도시로 천하만국의 서울 가운데 서울이다’ ‘파리 튈르리 궁의 어렴풋한 묘사나 모호한 설명은 그 화려한 제도와 웅장한 규모를 도리어 줄어들게 만들 것이다’ ‘파리 서쪽 뒷골목에는 부정한 미녀들이 짙은 화장과 요염한 옷차림으로 길가에 방황하면서 방탕한 자나 바람난 자들을 꾀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오랜 습관이 되었다’ ‘파리 대심원 건물 벽에는 압살(壓殺), 참살(斬殺), 소살(燒殺), 격살(格殺), 열살(裂殺), 교살(絞殺) 등 참혹한 형벌 모습을 그려 놓았다’는 것 등이 기술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 함부르크, 쾰른, 프랑크푸르트, 뮌헨, 포츠담이 소개되어 있다. ‘베를린은 오후가 되면 술 취한 사람들이 길가에 비틀거리며, 음풍이 성행하여 춘화를 공공연하게 파는 가게도 있다’ ‘함부르크는 매음하는 추태를 공공연히 자행하는데 유럽에서 유일하게 자기 집이 아닌 청루에서 영업한다’는 내용 등이 소개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헤이그(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성미여서 도랑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절대 없다), 라이덴(시민들이 학교설립을 희망하여 대학을 세웠다), 암스테르담, 로테르담이, 포르투갈의 리스본(작은 런던, 국력쇠퇴에 따라 번화함이 예전만 못하다), 포르투, 스페인의 마드리드, 세비야(투우는 야만스럽고 잔인한 풍속으로 스페인에만 성행하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놀이, 하루에 찔러 죽이는 소가 열댓 마리) 등 7개 도시, 벨기에의 브뤼셀(월터루라는 마을에 영국, 프랑스, 벨기에 군 전사자 무덤에 사자상을 주조하여 세웠는데, 앞발로 대포알을 밟고 파리를 흘겨보는 모습이어서 뒤에 프랑스 군이 폭파하려 했으나 시민들 저항으로 그대로 있어 프랑스 사람들이 놀러오지 않는다)과 안트워프 등 도시개황을 소개하거나 방문소감을 함께 적고 있다.

유길준은 외교사절로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여, 각각 1년 6개월 정도 유학목적으로 그곳에 체류하였으며, 귀국할 때에도 유럽을 거쳐 왔다. 『서유견문』은 그가 ‘듣는 것을 기록하고 보는 것을 베껴두는 한편, 고금의 서적 가운데 참고 되는 것을 옮겨 쓴 것’을, 연금기간 중에 보완한 것이다. ‘외국 사람들과 국교를 이미 맺었으니 온 나라 사람들(상하, 귀천, 부인, 어린이 구별 없이)이 저들의 형편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자보다는 유창한 글과 친근한 말을 통하여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여 국한문혼용체로 썼다고 밝힌다.

유길준은 계몽사상가로 『서유견문』은 대체로 ‘서양입문서’ 또는 ‘서양소개서’라고 할 수 있는데, 구미 여러 도시소개 역시 상식이나 교양 수준 정도의 개괄적인 내용일 뿐이다. 물론 당시 조선에서는 극소수만이 다녀 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의 내용도 신선한 충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용채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박용채 070-4699-7368 pyc4737@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