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령으로 지내고 있어요“… 『있지만 없는 아이들』
“우리는 유령으로 지내고 있어요“… 『있지만 없는 아이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7.0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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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버나움>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레바논 출신의 나딘 라바키 감독의 영화 <가버나움>은 ‘자인’이라는 소년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영화이다. 자인이 부모를 고소한 이유는 자식을 낳고, 책임 지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레바논의 사회 문제와 맞물려 있다. 실제로 레바논은 난민 위기를 겪고 있고, 이것이 경제 문제로 연결되면서 거리의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부모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피고가 된 엄마는 “나처럼 살아보기 전에는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못한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다.

이 영화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하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내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집이 있고,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이 당연하게 주어진 거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이뤄내야 하는 일생일대의 과제이다. 태어나보니 부모가 불법체류자의 신분이었다면, 그 아이도 불법이 되는 것인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것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왜 불법의 딱지를 붙이는 것인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비(非)존재 혹은 무(無)존재로 취급받는 사람들이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 역시 그렇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작가 은유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돌보지 않는 아이들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책에 따르면, 국내에는 2만명 정도의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배제와 좌절, 차별과 혐오가 일상인 하루하루를 보낸다. 심각한 것은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자라지만, 만 18세가 넘으면 부모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것이다.

은유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처한 현실을 ‘약자 뒤에 가려진 이중의 약자’ ‘조용한 불행과 부조리를 견디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 책에는 마리나, 페버, 김민혁, 카림, 달리아 등 이주아동 다섯명,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어른들인 이주아동의 어머니 인화, 이주인권활동가 석원정, 이주민 이야기를 꾸준히 써온 작가이자 이주인권활동가 이란주, 이주아동을 지원하는 변호사 이탁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은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로 태어났거나, 문제없이 살다가 아버지가 출국 후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가 됐다.

그들은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마리나), “태어난 건 죄가 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 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돼요.”(카림), “옷차림이나 먹는 게 조금 다른 것 말고는 크게 다른 점이 없잖아요. 사람은 그냥 사람이죠.”(달리아) 등 나를 나로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에 소리친다.

은유는 이 책을 통해 먼 이웃, 낯선 존재를 사랑하고 배려하며 ‘같은 사람’임을 느끼려면 우리 모두 이주민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아이들은 또한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단단한 존재이자,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훈련된 시민이기도 했다”며 “나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삶에 가닿음으로써 내가 나임을 증명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던 순간을 위로 받았고 운명을 마주하는 힘을 배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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