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독서인권] 시각장애인 한혜경씨 "온라인 세계에서도 우리는 배제되고 있어요"
[특별기획-독서인권] 시각장애인 한혜경씨 "온라인 세계에서도 우리는 배제되고 있어요"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6.2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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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장애인, 독서인권을 말하다]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입니다. 지적 격차가 삶의 격차로 이어지고 교육을 매개로 한 계층 대물림이 공고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는 삶의 질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독서 소외지대에 놓여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장애인의 독서 접근성은 비장애인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독서신문>은 국내 언론 최초로 장애인의 독서인권 문제를 취재해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시각·청각·발달장애인들의 독서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법적·제도적 미비점은 무엇인지를 점검합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김예지(국민의힘), 장혜영(정의당) 의원 인터뷰를 비롯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 부탁합니다.

-이미지 기반 재난지원금 문서, 전자 공보 등 불친절한 점 투성이
-휴대전화 읽기 기능, 안드로이드폰 부실하기 짝이 없어
-수험서와 교재 등은 비장애인보다 6개월 이상 늦게 접해
-독서는 삶의 태도와 지식 전해주는 선생님 같은 존재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중증 시각장애인 한혜경(25)씨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그는 독서하기에 어려운 조건 속에서 꿋꿋이 한줄한줄 읽어냈다. 빛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전맹이 되어서도 책을 놓치 않았다. 점자를 배워 손으로 세상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후천성 요인으로 시각을 잃는다. 한씨는 남아 있던 시력을 점차 잃은 경우에 속한다.

과학의 발전은 한씨에게 스마트폰과 PC로도 독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점자 문맹률 95%, 점자책 보급률 1% 상황에서 이같은 환경변화는 분명 놀라운 진보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됐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디지털 역량이 강조되는 비대면 시대에도 시각장애인이 받는 차별은 여전하다. 비시각장애인들이 만들어 낸 디지털 세상은 은연중에 시각장애인을 배제하고 있다. 학생으로서,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온라인 교육과 온라인 정보제공, 온라인 쇼핑 등이 일상화됐지만 정보 접근성은 여전히 쉽지않다. 정부의 전자 문서 조차도 이미지 기반의 PDF 파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알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서신문>은 시각장애인들의 독서 현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지난 11일 한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그는 자유소프트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문서 내용을 읽고 녹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유소프트는 시각장애인이 PDF 등의 디지털 문서를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이다. 또한 시각장애인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모임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로서도 활동 중이다. 언론에서도 여러번 등장해 장애인들의 디지털 문서 접근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뷰는 서울 송파구 ‘자유소프트’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독서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저는 1년에 100권 정도 읽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항상 100권까지 읽지는 못하고요. 한 80권 정도는 읽는 것 같아요. 책 정보는 온라인 서점 사이트나 블로그 리뷰, 유튜브에서 하는 책 리뷰를 보고 저랑 독서 스타일이 맞는 분들의 콘텐츠를 보고 책 읽기에 참고하고 있어요.

또 책 읽기 좋아하는 환경도 있어요.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피 터지는 추리 소설을 읽고 있는다든가(웃음), 자연에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요.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책으로 먼저 나오고 후에 영화로 구현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버스에서 책을 듣는 것도 좋아해요. 멀미가 나기 때문에 점자로 책을 읽지는 못해요. 어떤 분은 눈이 안 보이니까 멀미도 안 할 거라고 말씀하시는 데 그건 아니에요. 대중교통 이용하면서의 30~40분 시간은 자면 되긴 하지만 무언가를 들으면서 ‘내가 하나 더 알았다’는 사실이 진짜 재미있을 때가 있어요.”

[사진=최현식 PD]
[사진=최현식 PD]

-기억에 남는 책은 어떤 게 있습니까.

“오구니 시로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에요. 치매 노인들이 7일 동안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담은 내용이요. 치매 노인들이 7일동안 식당 운영을 하는데 정말 손님들이 무엇을 주문했는지 틀리는 경우가 번번이 일어나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장애가 있지만 저 역시 치매 노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또 우리가 ‘치매 노인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너무 일찍 포기해버리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어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독서하는 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저는 어느 시점부터 빛조차 볼 수 없게 됐어요. 그 전에도 사실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죠. 어렸을 때 시력이 어느 정도 됐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당시는 읽는 데 큰 문제는 없었어요. 나중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돼서 ‘큰 글자’로 쓰인 도서를 봐야 했어요. 스탠드를 켜 놓고 책을 눈에 가까이 대고 볼 만큼 그때도 책을 좋아했어요. 나중에는 점자를 배웠어요. 어머니께서 ‘차라리 점자를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를 하시기도 했고, 마침 시각장애인이셨던 친구의 이모에게 배워서 다른 방식으로 읽기 시작했죠. 나중에는 기술이 많이 발전한 덕에 독서 보조기나 핸드폰으로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사진=최현식 PD]

-점자 도서라고 완벽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진짜로 불친절한 점자 도서는 아예 그림 설명 같은 걸 생략해버려요. 꼭 도서가 아니어도 정부 부처에서 올려주는 문서에도 불친절한 점은 발견할 수 있어요. 어떤 정보는 문자보다 이미지로 설명됐을 때 와닿는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어떤 유명 정치인의 공약집을 보면 손글씨로 ‘○○○이 걸어온 길’이라고 써있는 경우가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받아본 전자 공보물에는 정작 아무런 표현이 없었어요. 또 어떤 동화의 경우 지금 이 장면이 어떤 장면인지를 표현해주는 게 아니고 단순히 텍스트를 옮겨주는 데 그쳐요. 동화를 읽는 시각장애 아동이나 시각장애인 부모가 비장애인인 자녀들에게 읽어줄 때 너무 불편해요.”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문맹률이 95%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점자보다 PC나 모바일로 읽는 경향이 크다고 들었어요. 스크린으로 나타나는 텍스트는 어떻게 읽는지 궁금합니다.

“휴대전화에 읽어주는 기능들이 다 있어요. iOS(애플사 제조 스마트폰의 운영체제) 같은 경우에는 읽어주는 기능이 자동으로 탑재가 돼있어요. 그 기능은 시각장애인이 따로 신청을 하거나 하지 않아도 아이폰은 다 탑재돼 있어요. 안드로이드에도 탑재돼 있는데, 반응 속도가 느리고 읽어주는 음성 자체가 듣기가 불편해요. 기계음이 심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많은 시각장애인들은 안드로이드폰이 아닌 아이폰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점자 문맹률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의 25만 명 정도가 시각장애인이고, 고령화층과 미등록 시각장애인까지 생각해보면 대한안경사협회에서는 45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계시더라고요. 점자 문맹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후천적인 시각장애인이 80~90%에요. 그러니까 태어난 이후, 그리고 65세 이상이신 분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요. 이 분들이 사실 나이들어서 점자를 읽을 일이 많지 않잖아요. 나이든 비시각장애인 분들도 한글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점자 독서가 전혀 효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화면에 나타난 디지털 글씨로 읽는 것과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거랑 비교해봤을 때 과학적으로 당연히 인쇄된 책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일례로 저도 책을 라디오처럼 많이 듣는데요. 성우 분들이 자원봉사로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도 있기도 하고, 독서 어플리케이션으로 책을 듣기도 하는데요.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남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맥락으로 흘러갔는지는 알겠는데, ‘주인공이 누구였지’ ‘그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했었지’ 등 구체적인 정보는 잘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직접 책을 읽고 싶어 하는 경향이 생겼죠.

하지만 아무래도 종이를 출력해서 책을 만드는 것이 비효율적이긴 해요. 묵자로 하면 A4용지 한 장을 쓰면 될 걸 점자로는 3~4페이지 씩이나 찍어내야 돼요. 점자 도서 제작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만들어진 책은 더 두껍죠. 이용자 입장에서도 (손으로 읽어야 하니까) 어깨도 아프고요. 사실 점자 도서 보급이 중요하지만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라서 이용자가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진=최현식 PD]

-스크린 리더가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설명해 주세요.

“말 그대로 PC나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나는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왔지만 아직도 이미지를 읽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요즘 PDF 문서를 이미지 기반으로 만드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스캔해서 이미지 파일로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스크린 리더로 내용을 읽을 수가 없어요.”

-디지털시각장애연대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언택트 문화가 생겼잖아요. 직접 만나기보다는 온라인에서 수업을 한다든지 행사를 연다든지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 온라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여기서 시각장애인의 권리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정부에서 사이트에 올려주는 문서는 어떨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학교 교재로 제공받는 이 PDF 문서들은 어떨까 살펴봤어요. 결과를 확인해보니 시각장애인들은 학생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소비자로서도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코로나 시대에 재난지원금 관련된 문서를 이미지 기반의 PDF로 올려주면 시각장애인들은 읽을 수가 없어요. 이런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디지털시각장애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막상 만들고나니 문의가 빗발치더라고요. ‘팟캐스트 들을 때 이게 안 된다’ ‘3개월 째 비밀번호를 못 찾고 있다’는 등의 불편 사항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어요.

시각장애인에게 인식시켜주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 방법을 몰라서 아직까지 잘 실행되지 않았을 뿐이죠. 사실 시각장애인들은 소비자로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시각장애인들에게 온라인 쇼핑은 너무나 필수적이잖아요. 나중에 마트에 눈 감고 쇼핑을 해보면 아시겠지만 상품이 너무 많아서 내가 원하는 걸 찾는 건 힘들거든요.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내가 검색하는 키워드가 그대로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런 어플리케이션에 보이스오버(VoiceOver, 화면에 있는 내용을 읽어주는 아이폰의 기능)가 접근할 수 있도록 환경만 잘 개선해 놓으면 시각장애인들에게 온라인만큼 편리한 곳이 없죠. 그런 부분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소비자로서 배제되고 있다는 걸 느껴서 디지털시각장애연대를 만들었죠.”

-독서 어플리케이션은 어떻게 활용하나요.

“사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건 시각장애인 대상으로 만든 어플인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이에요. 이 어플은 성우가 자원봉사로 직접 낭독해 듣기에도 편하고, 속도 조절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또 국립장애인도서관에는 ‘드림’이라고 하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어요. 거기에 올라온 책들은 아이폰 보이스오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데 사실 저한테는 그게 제일 편한거 같아요. 왜냐하면 항상 듣던 음성이다보니 더 인지를 빠르게 할 수 있으니까요. 또 한 복지기관에서 만든 어플리케이션에도 듣기 편한 음성으로 낭독을 해주고 있어요.”

[사진=최현식 PD]

-독서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시각 장애가 있다보니 드라마나 영상물은 자주 놓치게 돼요. 그런데 책은 제가 놓치지 않고 똑같이 읽을 수 있는 거에요. 어떤 장면에서 작가가 서술한 그대로 우리는 똑같이 상상할 수 있죠. 특히 소설 같은 경우에는 그림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동화책만큼 그림이 많지는 않잖아요. 그러다보니 동일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거기에서 제가 상상해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독서는 저한테는 선생님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삶의 태도라든가, 모르는 과학 지식을 전해주죠. 예컨대 고백이라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는 내가 믿고 있던 사실이 정말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하는 것들을 깨우치면서 보다 겸손해지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독서현실에 관해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까.

“독서보다는 교재 얘기를 더 하고 싶었어요. 물론 이게 한번 이슈가 되기는 했었어요. 비시각장애인들은 수험서나 교재가 서점에 나오면 서점에서 바로 사서 읽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은 그에 비해 3~4개월 늦게 그 교재를 접할 수 밖에 없어요. 완벽한 편집본으로서 그걸 접하게 될 때는 6월~7월이 돼서야 접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대학 때 와서도 불편은 이어졌어요. 제가 너무 불편했던 게 교수님들마다 사용하는 교재가 다 다르고, 같은 교수님이라도 작년에 이 교재를 썼지만 올해는 다른 교재를 쓰고 싶어져서 바꾸는 경우도 있고요. 이렇게 되면 저희로서는 국립장애 도서관이나 대체 교재를 만들어주는 곳에 이 교재가 등록이 되어 있는지, 이미 제작이 돼있는지 확인을 해요. 만약에 없으면 이걸 제작해 주겠다고 하는 기관으로 책을 사서 보내야 하고요. 그렇게 보내게 되면 기관마다 다 다른데 시간이 오래 걸리죠. 보통 3월에 맡기면 중간고사는 끝나야 편집된 완성본을 맏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 학습권이 정말 보장이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죠.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성숙도를 평가해 본다면요.

“보통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줄 알아요. 비시각장애인과 지능적으로 많이 차이가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우리가 내년에 감기 걸릴지 안 걸릴지 모르잖아요. 시각장애도 마찬가지에요. 80~90%에 해당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내가 시각장애인이 될 줄 몰랐던 분들이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원인을 알 수 없는 지병이나 사고에 의해서 생긴 것이고요. 우리는 그 장애를 가진 분들을 배제하고 갈 것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이들의 일상은 너무 다르니까 배제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떤 대학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수업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요. 수업 거부 사유로는 ‘동그라미를 칠 수 없어서’라는 말도 안되는 사유를 드는 경우도 있어요.

또 얼마 전에는 병원에서 일이 있었는데요. 보호자와 동행했을 때에는 물리치료를 받자고 말씀하셨다가 보호자 없이 혼자 가니까 아무런 말씀을 안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나중에 보호자와 동행을 했을 때에는 제가 아닌 보호자한테 말씀을 하셨고요. 일부 병원에서는 보호자만이 냉정하게 시각장애인의 병을 진단할 거라고 생각해요. 의사선생님은 저를 집에만 있는 사람으로 인식을 하고 계셨어요. 은행에서는 적금을 해지할 때 눈 앞에 있는 저를 두고 저와 동행한 친구한테 ‘얼마 해지하신대요?’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어요. 근데 그 친구는 제가 얼마를 해지하는 지 모르죠. 이런 부분에서 그 사람의 인식 수준이 드러나잖아요.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느낄 때마다 너무 슬픈 것 같아요.”

[사진=최현식 PD]

-비장애인이 장애인들을 도와주려는 시도가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다고 들었어요. 시각장애인분들의 경우에는 어떤가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도와주실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나는 진짜 이 쪽으로 가고 싶었을 뿐인데 누가 ‘거기로 가는 거 아니야’라고 일러준다든가, 가고 있는데 누가 안쓰럽다는 이유로 확 잡아당겨서 데리고 간다든가하는 일들이 있어요. 맞아요. 제가 비장애인이었어도 사실 안쓰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럴 때는 먼저 물어봐주시면 되게 좋아요. 어느 장애 유형이든 마찬가지에요. 휠체어가 어디 걸렸어도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혹시 제가 조금 도와드려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어보시면 서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책이나 텍스트가 있다면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추천하고 싶어요.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내가 되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모두가 시각장애인이 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시각장애를 가졌던 분은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이 사람이 선택하지 않은 삶과 일상의 문제점들을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 전시도 추천하고 싶어요. 아예 암흑 속에서 걸어다니면서 내 감각이 얼마나 민감한지 체험하는 거예요. 다섯 개의 감각 중 시각이라는 감각 없이 얼마나 내가 예리하게 100분의 시간을 걸어왔는지 체험할 수 있는 전시예요. 이것 외에도 가끔 한번씩 익숙한 공간에서 눈을 사용하지 않고도 일상을 살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자문=한혜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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