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글을 읽고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 상상을 실제 상황과 맞춰보는 것은 또다른 재미이지요. 저자가 처했던 상황, 시대 배경 등에 대한 이해는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됩니다. <독서신문>이 근현대 문학 배경지를 찾는 기행을 시작합니다. |
■ 시리즈 기사 연재 순서
“누가 나라를 뺏기라고 했나”... 문학기행 ① – 조정래의 『아리랑』
“생명의 땅 평사리는 인간의 탐욕을 나무라지만”... 문학기행 ② – 박경리의 『토지』
“쓸모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다”… 문학기행 ③ – 조두진의 『북성로의 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문학기행 ⑤ - 심훈의 『상록수』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자작나무는 고독을 연상시킨다. 하얀 수피가 이어져있는 자작나무 숲을 거닐면 자신도 모르게 사색에 잠기게 된다.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예세닌 등 러시아 문호들의 상당수 작품 역시 자작나무가 창작의 모태가 됐다. 소설가 김영현은 “북방 겨울의 원시적인 풍경이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문인에게는 더 없는 위안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강원도 평창에 사는 변경섭 시인(60)도 고독을 향유하는 문인이다. 격동기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86세대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던 변 시인은 2015년 8월 평창에 내려왔다. 1986년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민족민주운동연구소 상임연구원, 전교조 교육문예창작회 간사 등을 지내면서 노동자 문학 운동에 헌신해왔다.
자연을 벗하며 글을 쓰고 싶어 내려온 평창은 그에게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낙향을 위해 정선, 영월, 횡성 등을 두루 다녔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우연히 소개받은 평창 방림면 산골짜기의 작은 주택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인근은 자작나무 숲이었다. 그는 고교시절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전집을 읽으면서 자작나무에 대한 동경을 갖게됐다고 말한다.
시집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린다』(애지)는 그 결과물이다. 그는 평창에 자리잡은 그해 겨울을 보내며 자작나무 연작 시를 썼다. 연작 시의 처음을 장식하는 ‘자작나무에게-고백’은 자작나무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한다. 그는 그 감정을 “나는 시원의 기억처럼 자작나무가 / 내 마음속에 심어져 있었다”며 “전생에 무슨 인연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느껴지는 전율 같은 것”이라고 노래했다.
연작시의 두 번째 부제는 ‘사랑’이다. “오늘 너의 얼굴을 보고 싶다 / 너의 맨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하고 싶다 / 사랑 / 오늘 너를 비추는 달빛을 보고 싶다”라며 연정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연인의 하얀 속살로 표현하며 에로틱한 장면을 연출한 대목도 있다. 그는 같은 시에서 “너의 흰 피부에 부서지는 달빛에 내 몸을 씻고 싶다 / 내 마음까지 / 그래서 오늘 너의 몸을 보고 싶다 / 너의 벗은 몸을 보고 / 한 없이 울고 싶다”. 다른 시에서도 자작나무는 애정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이는 그동안 문학에서 자작나무를 고독한 구도자로 은유했던 것과는 다른 변주이다.
변 시인이 본 자작나무 숲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를 찾아 평창 방림면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서울에서 강원 횡성 둔내역까지 KTX로 1시간 30분. 다시 둔내역에서 30분정도 차를 달린뒤 대미산 한 가운데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자작나무골 작은 마을이 나온다. 마을에는 도시를 떠난 문화 예술인들이 터를 잡고 있다. 시인의 집은 오르막길에 심어진 자작나무 숲 바로 옆이다. 해발 1,230미터의 대미산 중턱 700미터 고도에 위치한 집은 한낮에도 서늘했다.
고독은 그의 자작나무 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정서다. 낙향한 그 해에 시인의 주변에는 사람이 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된 건 그 이듬해부터였다. 그는 2018년에 펴낸 에세이 『서리꽃 피고 꽃 지고』에서 “처음에는 사방이 산이요 밤에는 칠흙같은 막막함이 무척이나 겁나고 적적하고 외로웠다”고 말했다. 이때 자작나무는 그의 외로움이 투영되는 존재였다. 어떨 때는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이 연인의 나신(裸身)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자작나무는 이미 변 시인의 가족이다.
변 시인은 자신의 문학적 영감이 인간관계에 대한 외로움보다는 절대적인 고독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는 감각이 문학 작품의 출발점이 된다”며 “행복하면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겨울의 자작나무 숲이 고독한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면, 여름은 어떨까. 자작나무골 여름의 자작나무 숲은 단아한 인상이다. 한겨울 눈이 쌓여 만들어진 순백의 단조로운 분위기를 벗어 던졌다. 하얀 수피와 초록빛 나뭇잎 그리고 올려다본 하늘의 푸른 색이 조화를 만들어낸다. 그에게 여름 자작나무 숲의 매력을 물으니 “파란 이파리로 가득한 숲의 풍만함과 풍족함이 겨울 앙상한 나뭇가지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1,000평 남짓한 이 자작나무 숲에는 소박한 느낌도 있다. 통상 자작나무 숲이라 하면 끝없이 펼쳐진 설원에 빽빽하게 서 있는 하얀 나무들을 연상한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유명한 건 나무들이 산 전체에 넓게 펼쳐진 탓이다. 반면 대미산 자작나무골은 겨우 초로의 여행객을 달랠 정도로 규모가 작다. 시인은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이 고독을 그리는 무게감 있는 모습이라면, 이곳 자작나무 숲은 섬세하고 다정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변 시인은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린다』 출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책을 냈다. 에세이 『서리꽃 피고 꽃 지고』(2018)와 새 시집 『목발에 대한 생각』(2020)은 낙향 후 계속 글을 쓰며 살겠다는 결심의 결과물이다. 앞으로도 자작나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어질까? 시를 쓰고나서 4년여가 지난 지금 그는 자작나무에 대한 조금 다른 시선을 전한다. 그는 “자작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가 아니라 러시아나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자랐던 나무”라며 “그럼에도 자작나무는 이곳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도 자작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미산 자작나무숲 밖에도 변 시인은 문재옛길과 명품 숲길을 추천한다. 횡성읍에서 42번 국도를 따라가다 안흥에서 평창 방림으로 가는 길에 문재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는 과거 100년 한양과 관동지방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방림 18KM라고 쓰여진 낡은 표지판과 예전에 주막이었다는 목재 건물이 세월을 실감하게 한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길이 직선화됐지만 과거에 이 고개를 넘어가려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건너야 했다. 문재옛길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명품 숲길도 나온다.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고 나무로 만든 전망대와 야외무대도 있다.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