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혐오 극복을 위한 베르브너의 제안
갈등과 혐오 극복을 위한 베르브너의 제안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5.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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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5년 전 서울 강남역에서 여성 살해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사건은 혐오범죄로 규정됐다. 당시 강남역 일대에서는 추모 집회가 잇따랐다. 이후 한국사회에서 혐오범죄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논의됐지만 관련 법령은 여전히 요원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6월 성별, 장애, 출신국가 등의 이유로 특정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 및 예방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헌법은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차별과 혐오는 존재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혐오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 편집장인 바스티안 베르브너의 책 『혐오 없는 삶』(판미동)은 흥미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개인주의는 심화되고 편견과 혐오는 점점 커진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다소 뻔하지만 ‘접촉’과 ‘대화’이다. 생각해보자. 더 많이 접촉하고 더 가까이 있을수록 편견은 줄어든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문제는 이 명제를 일반화할 방법론이다. 우리는 흔히 비슷한 이들끼리 어울린다. 유유상종이고, 초록은 동색이다. 편견은 이처럼 동질화된 사회 환경에서 싹튼다.

이런 측면에서 그가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내 생활권 바깥에 있는 인물’들과의 접촉이다. 구체적으로는 내 일상의 톱니바퀴 안에 자리 잡지 않은 사람들, 나보다 많이 벌거나 적게 버는 사람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들을 거론했다. 장벽을 허물고, 편견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생각과 처지가 다른 타자와의 접촉이 절실하고, 이를 통해 사회 통합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베르브너의 설명이다. 그는 덴마크 경찰서와 보츠와나의 학교, 독일 각지에서 난민, 동성애 혐오자, 이슬람 급진주의자는 물론 이들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혐오를 넘어선 사람들과 사회의 얘기를 들려준다.

물론 ‘접촉의 역효과’도 존재한다. 특히 개별 인간이 아닌 집단으로 만날 때 역효과가 두드러진다고 베르브너는 지적한다. 그는 역효과를 줄이기 위해 개인이 자신들의 집단에서 빠져나와 비정치적 상황에서 사적으로 만나는 것을 제안한다. 이의 실례로 베르브너는 ‘독일이 말한다’라는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이 프로젝트는 실제 독일에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다른 정당에 투표한 8,000명 이상의 유권자들이 모여 대화를 시도해 화제를 모았다.

베르브너가 주장하는 접촉이 한국적 상황에서도 가능할까. 서울 강남 거주자들은 강남 거주자들끼리, SKY는 SKY출신들끼리 어울리고 만나온 게 한국적 현실이다. 정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야는 정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치와 갈등을 거듭한다.  한발 나아가 같은 정당 내에서 조차 편을 나눠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이질적인 목소리를 낸다.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있는 한국이 최근 초갈등 사회로 치닫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서로 다른 층위의 접촉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베르브너는 역설적으로 “차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만나야 한다. 서로를 알아 가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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