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정의로운 것은 어디를 봐도 없다”... 린지의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
  • 황현탁
  • 승인 2021.05.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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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⑩]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⑨ “사랑을 위해서는 불속에도 뛰어들겠다” 아이헨도르프의 『어느 건달의 방랑기』
⑧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칼을 들이밀며” - 카잔차키스 『일본중국기행』
⑦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⑥ “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⑤ “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소설가 데이비드 린지(David Lindsay, 1876-1945)가 쓴 첫 번째 소설로 1920년에 출판됐으며, 선악을 탐구하는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이다. 주인공 매스컬(Maskull)이 지구를 떠나 아르크투루스(Arcturus)라는 별 주위를 도는 상상의 행성인 토맨스(Tormance)를 여행하다 많은 인격체를 만나면서 실체와 의미를 파악해가다 죽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100년 전에 출판된데다 저자 사망으로 저작권이 보호되지 않은 탓인지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됐고, 최근에도 출판이 이어진 것을 보면 꽤 영향력이 있는 소설로 생각된다.

번역판 저자소개나 영문판 소개에도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의 『침묵의 행성 밖에서』에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J. R. R. 톨킨도 탐독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콜린 윌슨은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소설가 클라이브 바커는 “걸작이자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인지 KBS의 신간안내에도 소개됐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여행’관련 소설이기도 해 곧바로 책을 구매했다.

매스컬과 친구들은 스타크니크 천문대에서 어뢰 모양의 비행선을 타고 행성을 향해 ‘빛의 속도를 넘어 생각의 속도에 버금가는 빠르기로 우주를 가로질러’ 출발한 뒤 19시간 만에 모래밭에 도착한다. 매스컬은 깨어나니 혼자였다. 행성에서의 삶을 위해 이마에는 제3의 눈(breve, 눈썹 위의 눈 sorb가 있는 생명체도 있음), 양쪽 귀밑에는 혹(poign), 심장 부근 가슴에는 촉수(magn)와 같은 것들이 생겼다. 그곳에는 브랜치스펠과 알페인이라는 2개의 태양이 남북에서 비추고 있으며, 뜨거워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정오부터 네 시간을 ‘블러드솜버’라고 한다. 그곳에는 사막, 오아시스, 식물들이 있고, 생명체를 먹지 않으며 물(gnawl, 세이핑의 샘물)이나 나무의 수액, 술이나 알코올음료를 마신다.

행성 안에는 호수, 바다, 섬, 숲, 계곡, 절벽, 평원, 동굴, 협곡 등이 있으며, 매스컬은 여행 중 조이윈드와 남편 파나위, 오시액스와 남편 크림타이폰, 크림타이폰의 또 다른 부인 타이도민, 리홀페이, 코팽, 혼트, 설른보드 등의 도움을 받아 각 지역을 안내받고 이동한다. 그는 북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따라 여행한다. 안내인과 함께 걸어서 이동하나 때로는 등에 타거나 뗏목을 타거나 비행선을 이용한다.

매스컬이 만나는 사람들은 우주의 기준으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지닌 인간도 있고, 나이도 5분의 1씩만 먹는다. 매스컬은 노인, 청년, 부부, 연인 등 ‘100년을 함께 살아도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온갖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세계는 몸과 영혼이 바깥으로 보이는 페이스니(Faceny) 세계, 지하세계나 사후세계는 사이어(Thire) 세계, 관계의 세계는 앰퓨즈(Amfuse)라는 3개의 세계로 구성돼 있다.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무엇을 보든 세 차원, 즉 길이와 폭과 깊이에서 보는데, 존재는 페이스니의 세계, 느낌은 사이어의 세계, 성욕과 무관한 사랑의 세계가 앰퓨즈의 세계다. 매스컬은 3개의 세계에 모두 속한 존재다. 생명이 없으면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사랑이 없으면 종교적 감정 같은 것도 있을 수 없다.

매스컬이 만나는 생명체는 함께 여행을 하는 도중 살해되거나 죽는 비운을 맞으며, 매스컬 역시 ‘머스펠(Muspel)의 빛’을 보자, 그의 연인 ‘설른보드’가 죽는다. 머스펠은 인간이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벗어나 가닿고자 하는 이상향이자, 윤리적으로 완벽한 세계를 상징한다. 여행 마지막에 매스컬은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가혹한 현실과 고통을 상징’하는 크레그를 만난다. 그때 바닷물도 사라지고, 두 개의 태양도 빛을 잃었으며, 밑은 온통 신성한 ‘머스펠’의 불바다가 된다. 그는 불로 정화된 세계인 머스펠로 떨어져 죽음을 맞는다.

“크레그는 세이핑(세상에 형체를 준 신)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사랑에는 죽음을, 섹스에는 수치심을, 지성에는 광기를, 미덕에는 잔혹성을, 아름다운 외모에는 피투성이 내장을 더해놓는 식으로 세이핑이 하는 일마다 망쳐놓는” 망나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수치스럽고 추한 것에 맞서 싸우고,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위장한 죄, 자연의 섭리로 위장한 부도덕한 행위, 선한 신으로 위장한 악마에 맞서 싸웠으나, 결과적으로는 패배자가 된 것이다. 함께 떠났다 살아남은 자들은 다시 뗏목을 타고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아르크투루스로의 여행』은 465쪽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그렇다고 공상과학소설처럼 전율을 느끼거나 무협 소설처럼 죽고 죽이는 처절함이 드러나는 소설도 아니다. 책 속에서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일이 일어나고, 도덕적 원칙이 너무나 다른 행성”이라고 쓰고 있으나, 풍경묘사나 단순한 여정 묘사가 대부분이어서 솔직히 ‘읽기 시작했으니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가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지만 영국 스코틀랜드와 북유럽 신화에 바탕을 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해 이해가 쉽지 않았다. 상징과 은유가 많아 가끔 책 마지막의 ‘등장인물’을 들춰보기도 했다.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책에는 그렇게 표시했다.

‘이상향’을 꿈꾸고 현실을 초월하기보다는 불만족스럽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실적인 삶’이란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한편으로 ‘뛰어봤자 벼룩’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

“쾌활과 아름다움은 사치와 나태에 빠진 영혼들의 야수성을 뜻하는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너의 교만함을 경계하라! 세상과 시대를 심판하지 말고, 너 자신과 너의 하찮고 그릇된 삶부터 먼저 심판해라.”

“삶은 열정을 낳고 고통을 낳으며, 고통은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을 낳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쾌락에서 잉태됐으며, 쾌락에서 쾌락으로 옮겨간다. 정의로운 것은 어딜 봐도 없다.”

“아름다움의 세 요소인 인품과 지성과 평온함이 그 얼굴에는 분명히 있었다.”

“사랑에 눈을 뜨지 못한 자연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위해 삽니다.”

“길이와 폭을 합해도 깊이가 없으면 납작할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이 없는 생명과 사랑은 얄팍하고 피상적이기 마련입니다. 인간이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게 다가가려면 감정, 즉 느낌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미완성으로 내버려 두기엔 너무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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