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의 책과 경제] 자본주의의 피폐함을 고민한다면... 2022 대선 필독서
[박용채의 책과 경제] 자본주의의 피폐함을 고민한다면... 2022 대선 필독서
  • 박용채 편집주간
  • 승인 2021.05.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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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봉 추모집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

요즘 세계 자본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부자 증세 움직임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법인세를 올린 데 이어 최상위 부자들의 자본이득세를 2배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떨까. 똘똘한 한 채 소유자들은 자산 폭등으로 휘파람을 불고 있고, 우량주 공모에서도 통장 이체만으로도 앉은 자리에서 억 단위의 돈을 번다. “돈도 실력이야, 없으면 부모를 탓해”라는 말이 회자된 게 새삼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감세 주장만 난무할 뿐, 증세는 금기이다. 불평등 해결이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온 지 오래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장원봉.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경하지만, 사회적경제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전설이다. 인하대 국어교육과 졸업 뒤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과에서 석박사를 했다. 박사논문 ‘사회적 경제의 대안적 개념구성에 관한 연구’는 한국에서 사회적경제라는 개념과 담론을 주제로 한 첫 논문이다. 자연스레 국내 최초의 사회적경제 전공 박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성공회대 교수와 사회투자지원재단 등에서 사회적경제 운동을 펼치다 50세이던 지난해 4월 암으로 타계했다.

사회적경제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장 박사 타계 1년을 맞아 추모집 『한국 사회적경제의 거듭남을 위하여』(착한책가게)를 출간했다. 장 박사의 생각과 고민을 되짚으며 한국의 사회적경제 운동이 직면한 어려움의 극복 과정과 실천과제를 모색하자는 취지다. 추모집은 1, 2부와 해외 기고문으로 구성돼 있다. 각 부의 서두에는 장 박사 유고인 ‘사회적경제의 의미와 발전과제’ ‘사회적경제의 대안적 개념화‘를 중심으로 각각 한국의 사회적경제를 돌아보고, 시민 주도 사회적경제의 과제 및 실천전략을 살피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목적을 가진 경제활동으로 이해된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사회통합과 새로운 복지서비스 제공 등의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개념 자체는 오래됐다. 1900년에 나온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사회적경제 영역의 바이블로 통한다.

한국에서 사회적경제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횡행하고 노동시장 붕괴 등으로 사회적 약자의 삶이 더욱 고단해지면서 국가와 시장과 역할에 대한 질문이 커지면서부터다. 실제 저성장시대가 되면서 실업과 양극화는 우리 사회에 단단히 똬리를 틀었고, 불평등은 만연화됐다. 다만 사회적경제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여길지, 국가와 시장의 보완적인 영역으로 인식할지 등에 대한 논쟁은 여전한 상태다.

이번 추모집은 코로나19가 노동 세계의 균열을 확대하는 한편으로 이를 해결할 대안을 부각시키는 이중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쟁 지점이 많다. 장 교수는 생전에 사회적경제의 형성 주체인 시민사회가 정부 정책의 수행자로 전락하고, 시장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이윤추구 모델로 퇴행하는 것을 우려해왔다.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양적으로 크게 확대됐지만 되짚을 부분 또한 적잖은 게 사실이다. 사회적경제를 떠받치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에 대한 인식은 시장의 일부분으로 제한돼 있으며, 시민사회 역시 정부의 위탁사업에 길들여진 채 자립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명호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은 ‘사회적경제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글에서 정부와 일부 학자들이 “사회적경제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양극화를 완화해 격차를 줄이고 안전망을 강화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불평등을 억제하고,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주목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다분히 이상적이고 과장된 낙관론이며 당위성을 앞세운 규범적 판단이라고 지적한다.

따지고 보면 지난 10여 년간 한국 경제의 중핵 기제는 경제민주화와 사회적경제였다. 문재인 정부 역시 사람 사는 경제를 내세우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제민주화를 통해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출범했다. 하지만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되레 확대시킨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좋은 일자리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에 매몰되어 왔고, 그에 따른 추태도 목격했다. 집값 폭등은 공정과 평등은커녕 불공정, 불평등만 확산시켰다.

이런 점에서 ‘탈임금 노동사회의 딜레마와 한국의 사회적경제’를 고찰한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의 글은 더 직설적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소득 상위계층은 안전 공간으로 이동해 비대면 생활을 영위하지만, 자영업자나 필수노동자들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줄거나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노동자 해고하거나 무급휴직을 통해 비용을 사회에 부담시키는 것은 새로운 일 아니다. 정부 역시 이들을 돕기 위해 한시적인 지원정책을 편다. 하지만 이런 지원방식은 역설적으로 상시적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측면에서 코로나19가 촉발한 기본소득논쟁이나 지역화폐 논쟁은 사회적경제를 재호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교황은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말한 바 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보통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금수저를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사실상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야 사령탑이 교체되고 조만간 후보 선출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은 이미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고 있다. 무엇으로 그들을 판단해야 할 것인가. ‘장원봉 추모집’은 시민들이 2022년 대선 후보들에게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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