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지에 깁스, 입원 2년... 당신 같으면
교통사고, 사지에 깁스, 입원 2년... 당신 같으면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4.28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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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골절만 11군데, 사지엔 깁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초록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신호 위반한 버스에 부딪혔다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고 당일은 간이식을 받고 퇴원한 아버지를 위해 직접 불고기 요리를 하겠다고 했다는데 사고 앞뒤 한 달가량의 기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2년간의 지난한 병원살이가 시작됐다. 책 『이왕 살아난 거 잘 살아보기로 했다』(더블엔)의 저자 채원의 이야기다.

2019년 4월 22일의 사고는 은주(채원의 개명 전 이름)의 삶을 불행으로 내몰았다. 이력서 제출 98번 만에 간신히 입사한 회사에서 1년 만에 비정규직 계약이 종료돼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년째 앓던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사고는 그런 상황에서 발생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욕창 방지를 위해) 자세를 바꾸려 매일같이 (남자) 간호사에게 맨 엉덩이를 드러내는 수치를 겪었고, 사지 골절의 고통과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부러진 뼈는 회복됐지만, 이명은 여전했다. 사고 당시 완전 골절된 왼손은 이제껏 물건을 움켜쥘 수 없는 상태이다. 다리에는 치마를 입을 수 없을 정도의 흉터가 크게 남았다.

마음의 병이 시작된 건 6살 무렵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에 취한 아버지와 대판 싸움을 벌이던 엄마는 이불 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저자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내던졌다. “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주는데 네가 뭐가 슬퍼” 저자는 “벌써 26년이 지났지만, 그때 엄마의 표정과 말투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며 “내가 엄마 아빠를 더 기쁘게 하지 못해서 자꾸 두 분이 싸우는 걸까? (라는 생각에) 점차 우울이라는 감정이 또렷해지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고 토로한다. 실제 저자는 이후 한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마음의 병을 앓던 저자에게 닥친 몸의 병은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우울과 불안으로 점철된 마음을 숨기느라 늘 ‘괜찮은 척’으로 일관했던 저자는 사고를 통해 역설적으로 회복을 경험했다. 외출·외박·면회가 금지되는 통에 “건물 밖 땅 한번 밟아보는 게 소원”이 된 악조건에서 억지로 쓴 ‘감사일기’가 주효했다. 제주도에 터를 잡았던 이효리가 전한 “서울에 사나, 제주에 사나, 마음이 지옥 같은 사람이 많더라고. 어디에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곳 그 자리에서 만족하는 게 중요해”라는 말에 힘입어 “내가 무능력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버스에 치이고도 살아난 걸 보면 어쩌면 강한 사람일지도 몰라” “초록불에 잘 건너서 나중에 보상을 모두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등의 감사로 “행복한 하루”의 기쁨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간병비가 부담돼 옮긴 요양병원에서 만난 정이 언니의 ‘솔직함’도 마음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있잖아. 나는 네가 점점 좋아져.” 편마비로 뇌 기능이 제한되어 “기능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언니의 말에 저자는 “그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며 “거짓 없이 진솔하게 누군가를 대하는 것,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아끼는 태도가 사람의 마음을 이끈다는 걸 언니를 통해 배웠다”고 고백한다.

상대의 부정적 반응에 휘둘리지 않는 비결도 체득했다. 사람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해 다쳤다’는 말에 누군가는 “얼마나 아팠을까?”라며 걱정해주었지만, 누군가는 “병신은 안 됐나 봐?” “너도 뭔가 잘못한 거 아냐”처럼 뾰족하게 반응했다. 또 목이 아프다는 호소에 “목이 아픈데 화장할 시간은 있었나 봐?”라며 비아냥대는 간호사가 있는가 하면 직접 차를 끓여 병실로 가져다주는 친절한 간호사도 있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과거에는) 남들이 내게 무심코 하는 말을 꿀꺽 받아먹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건) ‘나’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거다. 나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것처럼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말에 속지 말자”고 권면한다.

2년간의 병원 생활을 뒤로하고 수의학과에 입학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저자는 ‘잘한 건 즉각 칭찬해주고, 못한 건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훈련법을 통해 자신과 타협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예전 같으면 “내가 왜 또 라면을 먹었을까. 살도 찌고 몸에도 안 좋은데... 나는 먹는 것조차 조절을 못 하는 사람인가 봐”라고 생각했을 일도 이제는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 다음엔 라면 말고 차라리 비빔국수를 먹자”라고 한다.

그간의 과정을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올려 적잖은 공감을 얻어낸 저자는 “내 경험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겠구나. 나를 위해 쓴 글이었는데 이 글이 누군가를 위한 글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칭찬도 연습이더라. 연습하면 되더라. ‘잘한 행동은 무한칭찬, 못한 행동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연습’을 해보는 게 어떨까? 내가 보장한다. 분명 조금씩 나아질 거다”라고 위로를 전한다.

극심한 불행 속에서 감사를 외치는 저자의 진솔한 고백에 감사로 화답하는 반응이 온라인에 넓게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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