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채 칼럼] 세금은 늘 불의가 승리한다
[박용채 칼럼] 세금은 늘 불의가 승리한다
  • 박용채 편집주간
  • 승인 2021.04.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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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채 편집주간
박용채 편집주간

집권 여당의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 패배 원인을 놓고 백가쟁명식 논의가 한창이다. 선거직전의 LH사태는 물론 2년 전의 조국 사태까지 호출한다. 물론 자타가 인정하는 최대 원인은 부동산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다. 섣부른 임대차법 개정으로 인한 전월세가 상승, 전례없는 집값 폭등, 그리고 세금 문제까지 겹쳤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 등 집값 폭등의 최대수혜지에서는 되레 압도적으로 야당을 선택했다. 거액의 미실현 이득은 훗날 얘기이고, 당장의 세금부담에 손사래를 쳤다. 세금이 늘면 선거는 필패한다는 호사가들의 말 그대로였다.

현대 정치에서 세금이 선거를 좌우한 사례는 차고넘친다. 1980년대 미국 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이 각각 증세와 부유세 도입 공약으로 패배했고, 보수당인 영국의 대처 정부조차도 인두세 도입을 추진하다 막을 내렸다. 일본 역시 소비세 도입 때마다 지방선거에서 졌다. 세제개혁은 금기어가 됐고, 국가부채는 확대 일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조원동 경제수석의 ‘깃털 발언’도 기억에 새롭다. 당시 조 수석은 연말정산 세법개정 과정에서 프랑스 재무상 콜베르의 말을 인용하며 “세금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더 거두는 것”이라고 말해 몰매를 맞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거위 깃털 발언은 조세정책의 정석이다. 중립성과 형평성, 소득재분배를 고민하는 정부로서는 국민 고충을 최소화하면서 제대로 세금을 거두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난타를 당한 것은 불합리한 조세체계는 놔둔 채 서민 호주머니를 터는 꼼수 증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이 부동산 반성문을 쓰면서 종부세 기준 완화 및 재산세 조정, 무주택자 대출완화 등 대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민심에 귀울인다는 명목이지만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것은 쉬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정책은 시행과정을 보아가며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생각해보자.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부동산 민심의 본질은 세금이 아니라 가격폭등이다. 서민들의 좌절감, 청년들의 코인열풍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다수 서민들이 소수의 부동산 수혜계층의 세금을 낮추는 것에 동의할까. 설령 세금을 낮춘들 그들의 표가 민주당에 되돌아올까. 가능성은 낮다. 되레 ‘부자에 고개숙인 정부여당‘이란 비아냥만 들을 게 뻔하다. 그런 측면을 감안하면 당연히 집값을 낮추는 데 정책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  기득권을 넘지 못해 포기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차제에 증세 논의를 시작해 조세 정의의 희망을 보여주는 게 옳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사태이후 계속된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이대로 갈 경우 다음 정부의 경제 운용이 힘들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이매뉴얼 싸에즈, 게이브리얼 저크먼은 공동저서 『불의의 승리』(The triumph of injustice)에서 “미국은 최고소득구간 세율 90% 이상, 가액이 큰 부동산 세율 80%, 기업 이익 세율 50% 이상이던 1930~70년대가 경제적 활력이 가장 좋았다”고 설명한다. 반면 1980년대 레이건 정부 등장이후 최고소득구간은 물론 법인세율을 크게 낮췄지만 성장은 둔화되고 부의 집중과 경제적 불평등은 가속화됐다고 말한다.  물론 한 국가의 경제 변화를 조세정책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금인하를 성장으로 등치하는 보수 진영의 주장 역시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

오랫동안 불합리했던 부동산 조세체계는 바뀌어야 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연간 재산세는 주택가액의 0.28%(하와이주)~2.49%(뉴저지주)까지 다양하다. 평균적으로는 1% 안팎이다. 10만달러(약 11억원)짜리 주택의 보유세가 연간 1만달러(약 1,100만원)이라는 얘기다. 다만 취득세, 양도세 부담은 한국에 비해 적다. 미 워싱턴DC에 있는 국세청 본부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세금은 우리가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다.” 문명을 너무 헐값에 사려는 것 아닌지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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