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책 한 모금] 인정욕구란 감옥
[서믿음의 책 한 모금] 인정욕구란 감옥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4.0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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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방 고교의 럭비 선수인 A는 유망주로 여겨져 현(県, 일본의 행정지역은 47개 도도부현으로 구성) 대표 선수로 선발됐다. 현 대표로 선발된 후 많은 지원과 주위의 인정을 받으면서 연습에 매진할 수 있었고, 덕분에 눈부신 실력 향상을 이뤄내 지역 럭비계의 관심을 끄는 선수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후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알고 보니 현 대표 선수 선발 과정에 오류가 있어 B 선수 대신 A가 잘못 선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진상이 밝혀진 그 시점에 A 선수는 이미 B 선수를 크게 앞지른 상태였다. 이를 두고 일본의 경영학자 오타 하지메 교수는 책 『인정받고 싶은 마음』(웅진지식하우스)을 통해 “(A 선수가) 인정받았기 때문에 성장했는지, 성장했기에 인정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자신감과 격려가 되어 성장하게끔 한 상징적인 사례임이 분명하다”고 설명한다.

인정을 받으면 일에서든 공부에서든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끼는 내발적 동기부여가 샘솟는다. 굳이 연봉 인상이나 승진 등 외발적 동기부여가 없더라도, 삶의 의욕이 높아진다. 그에 따라 결과는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이 때문에 인정욕구는 때때로 자아실현을 능가하는 인생 최대 가치로 여겨지기도 한다. 17세기 철학자 파스칼이 “인간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한들, 아무리 건강과 생활의 안정을 유지한들 타인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한 만족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대다수 감정은 인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랑과 존경의 감정 역시 뜯어보면 그 안에는 존재 자체로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거나, 업적과 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리한다.

다만 이런 인정욕구도 잘못 사용할 경우 불행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특히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인정받아야 돼’라는 압박으로 변화할 경우 사람은 인정욕구라는 감옥에 갇히고 만다. 인정욕구의 불충족도 문제지만, 인정욕구의 유지 역시 중대한 문제다. 성취한 인정을 유지해야한다는 부담이 압박으로 작용해 되레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승진하거나 성과로 크게 주목받은 후 퇴사하는 인재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메 교수는 “월급이 1만원 오른다고 그리 기쁘지 않지만 1만원 떨어지면 매우 기분이 나쁘고 저절로 의욕이 사라지는 원리”라고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칭찬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칭찬은 좋은 것이고 질책은 나쁘다고 얘기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질책보다 칭찬이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혼이 나면 반발할 수 있으나 칭찬을 받으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칭찬은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양면성을 지니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라고 조언하지만, 이는 자녀 양육에나 해당할 뿐 냉혹한 사회생활에서는 예외인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한국에도 알려질 정도로 홈런 타자였던 일본의 기요하라 가즈히로는 인정욕구가 발목을 잡아 불미스러운 결말을 맞았다. 몇 번의 슬럼프로 좌절을 경험한 뒤 재기를 노렸으나 여의치 않자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각성제거래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하지메 교수에 따르면 기요하라는 저서를 통해 ‘타이틀을 따고 싶었다’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다’라는 강한 의식이 오히려 헛발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고 밝혔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영광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불충족의 상황이 욕구 강박으로 발현된 것이다.

인정욕구를 적절히 사용하는 데에는 사회적으로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저자는 ‘상대화’를 해결책 중 하나로 지목한다. 하지메 교수는 32회 우승 기록을 깨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야구선수가 40회 우승을 염두에 두면서 좋은 결과를 얻은 사례, 이상적인 자신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크고도 먼 꿈을 생각하면서 시험 합격 부담을 떨쳐버린 사례를 통해 “눈앞의 목표에 구애받기보다는 의식적으로 훨씬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당장의 목표를 상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정을 갈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지만, 유독 인정욕구에 힘겨워하는 일본인의 성정은 한국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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