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17세기 서양에서는 다복하거나 부유한 이들만 얼음 저장고에 접근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얼음이 얼마나 귀했는지, 석빙고 관리가 추석 전날 얼음을 잘못 관리해 큰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20세기 초에도 냉장고라는 물건은 극히 일부 가정에서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냉장고는 우리 시대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부의 상징이었던 냉장고가 필요의 영역으로 옮겨졌다.
가전제품의 양을 줄이고자 하는 이 시대에도 냉장고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가전제품은 하나씩 사라지거나 소형화되는 추세지만, 냉장고는 더욱더 중요성이 인정받는 분위기다. 요즘 냉장고는 내용물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식품의 유통기한을 알려주고, 온라인으로 식자재를 주문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지난해 백신 운송 과정에서 콜드체인(저온 유통 체계) 관련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냉장고와 냉장기술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질 전망이다.
언제나 그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해왔던 가전은 나름의 역사를 품고 있다. 그런 면에서 런던과학박물관 큐레이터인 이 책의 저자는 새로운 관점에서 냉장고의 역사와 관련 일화를 들려준다. 그의 설명에는 백과사전 같은 면이 있으면서도 일관된 흐름이 있다. 과거 ‘사치품이었던 냉장고는 어떻게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는가’하는 질문을 놓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익숙했던 냉장고를 조금 낯설게 바라보자. 우리가 매일 여는 냉장고 안에는 어떤 ‘필요’가 담겨 있을까.
『필요의 탄생』
헬렌 피빗 지음 | 서종기 옮김 | 푸른숲 펴냄 | 352쪽 | 1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