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걸’이 기존의 젠더 체계에 저항하는 방법
[송석주의 영화롭게] ‘걸’이 기존의 젠더 체계에 저항하는 방법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1.10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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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돈트 감독, <걸>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책 『젠더 트러블』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는 “섹스(sex : 생물학적 성)는 언제나 이미 젠더(gender : 사회문화적 성)”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섹스와 젠더 모두 타고난 실체가 아니라 규제적인 관습과 반복된 실천에 의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수행적 행동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버틀러가 보기에는 몸과 그것에 관한 생물학적(혹은 의학적) 인식도 젠더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본질이라고 규정하는 특성을 지속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완성되는 이념적 구성물이자 제도적 담론입니다.

버틀러의 주장은 ‘성전환 지향’을 뜻하는 트랜스젠더리즘(transgenderism)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자주 사용됩니다. 트랜스(trans)는 횡단과 초월, 다른 상태로의 변화와 이전을 의미하는데, 트랜스젠더(transgender)가 등장하는 영화는 대개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기존의 이원화된 젠더 체계로부터 벗어나 그것을 전복하려는 특징을 보입니다. 어떤 존재를 단일한 범주로 포섭하고 울타리 치는 것을 거부하는 탈중심적 이미지가 지배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죠.

루카스 돈트 감독, <걸> 스틸컷

루카스 돈트 감독의 <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는 기존의 젠더 체계에 물음표를 던지며 모종의 균열을 시도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라라’(빅터 폴스터)는 소위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젠더 정체성(gender identity)을 여성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라라는 출생하면서 병원으로부터 부여받은 지정성별(assigned sex)과 스스로 인지하는 젠더 정체성 사이에서 불화를 느끼는 트랜스젠더 여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라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각각의 젠더 체계에 동시에 속하면서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지만,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유입되지 않는 경계인으로서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 사회가 정상 혹은 표준으로 정의하는 관습적 구분을 가로지르며 탈주하는 존재이지요. 다행인 것은 가족들이 라라의 젠더 정체성을 존중하고, 그녀가 여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응원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라의 일상은 그리 순탄하지 만은 않습니다. 발레 학교에 다니는 라라는 경계인으로서의 애매한 위치 때문에 곤란하고, 폭력적인 순간에 왕왕 직면합니다. 가령 선생은 교실에서 라라의 눈을 감게 한 뒤, 다른 학생들에게 혹시 라라가 여자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는 게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보라고 해요.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물어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또 여자 친구들은 라라에게 ‘가운데 다리’를 보여 달라며 도를 넘는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걸>은 트랜스포비아(transphobia)의 폭력성을 경계하고, 이분법적인 젠더 체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라라가 자신의 생식기를 스스로 잘라내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성전환 수술을 앞둔 라라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무모해서가 아닙니다. 영화는 라라의 결단적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정의내리는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自身)이어야 한다는 것을 피 흘리며 선언하고 있는 거지요.

루카스 돈트 감독, <걸> 스틸컷

‘발레리나’를 꿈꾸는 라라는 푸앵트(pointe)를 어려워합니다. 푸앵트는 발끝으로 서서 하늘을 향해 몸을 끌어올리는 발레리나의 기본적인 기술이에요. 다른 여자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푸앵트를 연습해 발이 단련되어 있지만, 라라는 (추측컨대,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인지한 후에 시작해서) 그러한 과정을 뒤늦게 거치고 있습니다. ‘발레리노’였다면 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인 푸앵트를 성공하기 위해 라라는 발에 피가 나도록 연습하지요.

한편 푸앵트는 앞서 언급한 젠더의 의미, 그러니까 규제적인 관습과 반복된 실천에 의해 수행적으로 만들어지는 행동 양식의 상징적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푸앵트가 부단히 반복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노력의 결과물이라면, 젠더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잉태한 구조적 복합물입니다. 결국 두 가지 모두 타고나는 것이 아닌 일련의 지속적인 행위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죠.

이처럼 <걸>은 라라가 트랜스젠더 여성이 되는 과정과 발레리나가 되는 과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플롯으로 전개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카메라가 안정적으로 푸앵트를 성공하는 라라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이 마치 발끝으로 세상에 서는 일처럼 쉽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어 하는 듯이 말이죠.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 관객이 볼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라라는 발가락이 부서져라 계속 푸앵트를 연습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성공할 테지요. 당당하고 주체적인 ‘자신의 몸’으로 말입니다. <걸>은 스스로의 존재를 긍정하고 증명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관한 영화이자 오롯한 나로 살아가려는 한 인간에 대한 경의와 진심 그리고 축복이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아프도록 사무치지만, 아름답게 빛나는 이유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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