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빛을 부여잡으며
한 줄기 빛을 부여잡으며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0.12.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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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살갗에 와 닿는 햇살이 마치 어머니 품속처럼 따숩다. 그래서인지 이즈막 유독 태양빛을 탐한다. 이는 맵찬 겨울바람 영향 때문만은 아닌 성싶다. 겨울철 일조량이 줄어든 탓에 본격적으로 햇살이 온 누리에 퍼지는 시간에 맞춰 아파트 앞 호숫가를 거닐어야겠다는 의욕에 의해서다.

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한정 머리 위에서 황금 빛살처럼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쾌청한 날 문밖만 나서면 온몸으로 맞이할 수 있는 흔하다고 할 수 있는 햇빛 아니던가.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남의 고통을 미처 몰랐을 때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한 줄기 햇살은 허기질 때 따끈한 밥 한 그릇만큼이나 절실하다는 것을 이즈막 깨닫는 일이 있었다.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했다. 그날따라 활기찬 그녀의 고음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십수 년 전 갑자기 그녀는 서울 노른자위 땅에 자리한 고급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리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지하 단칸방에서 삶을 꾸려왔다. 그때 그녀는 따스한 햇살이 온종일 넓은 창에 내리쬐는 집에 사는 게 간절한 바람이었다고 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졸지에 빈털터리가 된 그녀다. 자존심 때문인지 친구들 앞에서조차도 자신의 영락(零落)한 가정 형편을 밝히지 않았다. 이 년 전, 비로소 친구들에게 자신이 겪은 삶의 역경을 털어놓은 그녀다. 

당시 그녀는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평소 써 오던 돈 씀씀이를 줄이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심지어 전기 한 등, 물 한 방울도 절약해야 하는 궁핍한 삶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나 보다. 그녀는 지난날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자신이 사는 동네 시장 한구석에 자그마한 가게를 임대해 생선을 팔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생선가게가 몫이 썩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손님들을 친절히 대해서인지 장사가 꽤 잘 된다고 했다. 십수 년 동안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생선을 팔아온 그녀다. 그녀의 성실하고 억척스러운 삶이 드디어 지하 단칸방 신세를 청산하게 도왔다. 그토록 원하던 따사로운 햇빛을 온 가족이 받아볼 수 있게 됐단다. 얼마 전 서민 아파트를 구입한 게 그것이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매일 술로써 시름을 달래 오던 남편도 재기시켰다.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사업을 재개하기에 이르렀단다. 그녀를 보며,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라는 속담이 문득 떠오른다. 이로보아 태양빛은 온 우주 만물에게 생명의 도약을 선사한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분간 못 할 암흑은 절망이며 불행을 암시하기도 한다. 충격적인 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눈앞이 캄캄하다” 라는 표현에서 ‘캄캄하다’가 암흑을 의미하잖은가.

누구나 삶을 살며 자신의 앞날에 대해 자만 및 절망, 예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제 무슨 일로 금시발복今時發福 하거나 바람 앞의 등불인 신세가 될지는 신조차도 미처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불행인 경우 느닷없이 자신 앞에 닥쳤을 때 그것을 의연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용기와 신념뿐이다.

하지만 험난한 인생사에 부딪치고 쓰러질 때 그 장벽을 무난히 뛰어넘는 일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 자체가 고통이어서다. 어느 경우엔 생존이 죽음보다 더 큰 통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은 인간만이 지닌 게 아닌 성싶다.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을 볼 때마다 느낀 소회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노라면 화면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못내 안쓰럽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생존을 위한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먹이 사슬의 정점에 놓인 사자, 표범 등의 야생 동물들도 사냥을 못 하면 굶주리기 일쑤다. 하이에나는 다른 동물들이 잡아놓은 먹잇감을 그들로부터 빼앗아 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치타는 잡은 먹잇감을 지키려고 온 힘을 다해 먹잇감을 나무 위로 끌고 오른다. 기린 역시 자칫 방심하면 표범에게 긴 목덜미를 덥석 물릴까 봐 쉬지 않고 벌판을 내달린다.

이렇듯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그것들 역시 인간 못지않게 생존을 위해 온갖 고통과 스트레스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인간도 매한가지다. 생존경쟁이라는 치열한 현실에서 내 밥그릇을 얻기 위해 오늘도 안간힘 쓴다. 어디 이뿐이랴. 불과 수십 년 전 만 해도 가난이라는 고통이 삶을 옥죄는 족쇄로 작용하기도 했었다. 요즘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생명 줄을 쥐락펴락한다. 그러나 죽음을 목전에 두었어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레테 강을 용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방 수칙과 철저한 개인위생, 사회적 거리를 지키는 게 그것이다. 그러노라면 새해엔 생명 줄인 코로나19의 백신과 치료제가 한줄기 밝은 빛으로 곧 우리 곁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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