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몸도 마음도 귀하게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몸도 마음도 귀하게
  • 스미레
  • 승인 2020.12.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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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네, 엄살이네 하는 소리는 싫었다. 어딘가 축나는 기분이 들어도 기분 탓만 했던 건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허나 엄마가 되어 느낀 극한의 피곤은 이전의 피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발끝에 걸린 내 그림자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링겔을 맞고, 한약도 먹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선 운동도 노동일 뿐, 할 게 못 되었다. 병원에 가봐도‘잘 쉬라’는 말뿐이니, 이 극심한 피로를 어쩌지 못해 억울하고 답답했다.

그러는 사이 몸엔 온갖 염증이 생겼고 피부 장벽이 손상돼 헐기 시작했다. 1년 내내 다래끼와 장염, 위염이 번갈아 덮쳐왔고 잠깐 쏘인 햇빛에도 저온 화상을 입었다. 겁이 났다. 이대로 모든 게 멈추면 어쩌지? 이 상태로는 화분 하나도 못 키울 것만 같았다. 집을 나서면 고라니에게 잡혀갈지도 몰랐다. 아이는 아직 어린데 엄마인 나한테 큰일이 생기면 어떡해. 눈을 감으면 진부한 드라마 한 편이 펼쳐지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렇게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애면글면 나에 대해 알아갔다. 마치 실험하듯 나는 어떨 때 가장 편안한지, 적정한 온습도는 어느 정도인지, 잠은 얼마나 자야 개운한지, 월경 전 증상은 무엇인지, 뭘 먹으면 소화가 잘되는지 등을 하나씩 체크했다.“엄마가 너 돌보듯 너 자신을 귀하게 여겨. 너는 목도리 안 하거나 양말 안 신고 다니면 꼭 감기 걸렸어. 기침하기 시작하면 소금물로 가글 시키고 생강차를 먹였지.”엄마의 잔소리도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나는 헛똑똑이였다. 별건 다 알아도 정작 스스로에 관해선 나설 처지가 못 됐다. 어떻게 여태 그런 것들도 모르고 살았을까? 멀쩡히 살아온 게 기적이라면 기적 같았다.

그러나 어떤 일에든 길은 있기 마련이다. 육아하며 느낀 지독한 피로감 덕분에 나를 돌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애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특히 육아라는 극한 상황에서 엄마는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엄마의 에너지는 귀한 소모품이고 아이와의 하루는 길다. 그러므로 에너지 비축과 분산은 필수다. 중요한 일, 그리고 돌발적인 상황이나 감정 소모에 대비한 여분의 에너지를 꼭 남겨둬야 한다.

아이의 식이 만큼 엄마의 식이도 중요하다. 기분에 민감한 사람은 알 것이다. 기분에 따라 식욕과 소화 능력이 롤러 코스터를 탄다는 것을. 이 때문에 열(列)육아기엔 다이어트를 포기했었다. 나는 날씬하고 화 잘 내는 엄마보다, 통통해도 복스럽게 잘 먹고 온유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과일, 고구마, 빵 등을 아이와 함께 조금씩, 자주 먹었다. 결핍이나 강박이 사라지자 식탐도 사라졌고 더딘 속도였지만 살도 빠졌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음식을 모아봤다.

※ 열을 올려주는 음식

몸이 추우면 활동성이 떨어지고 마음도 움츠러든다. 나는 이럴 때 열을 올려주는 카레나 토마토 수프를 만들어 먹는다. 특히 카레엔 강황이 들어있어 금세 체온이 오르고 몸이 풀리는 게 느껴진다. 마음이 동하는 날엔 인스턴트 카레 대신 강황 가루와 코코넛 밀크로‘진짜 카레’를 만들기도 한다. 겨울에는 생강이나 우엉 같은 뿌리 식물을 달여 먹는다.

※ 물

긴장도가 높아서인지 목이 자주 마르다. 때문에 밖에서는 물론 집 안에서도 예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물을 자주 마신다. 물만 잘 마셔도 허기짐이나 메스꺼움 같은 불쾌감이 확실히 덜하다. 특히 육아는 엄마의 목을 담보로 하는 활동이기에 요즘처럼 건조한 때엔 습도에도 신경을 쓴다. 가습기를 틀거나 실내에 빨래를 널어둔다.

※ 집에서 만든 음식

유기농, 채식, 소식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특별한 보조제에 의존한 적도 없다. 다만 격 없이 차린 집밥을 아이와 나눠 먹으며 속이 편해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요즘은 바깥 음식을 먹으면 어김없이 배탈이 나거나 뾰루지가 솟는다. 몸에서 이렇게 거부하는 것을 그동안 모른 척 꾸역꾸역 욱여넣었구나 싶다. 국 하나, 반찬 하나 놓고서라도 구태여 집밥을 먹는 이유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빵이나 과자, 아이스크림도 웬만하면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최근에 열심을 낸 것은 요거트다. 유산균이 장내 환경에 변화를 주면 신경이 안정되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최고는 친정엄마 밥이다. 주말에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에 더덕구이, 계란찜 같은 걸 먹고 숭늉까지 마시고 오면 보약을 먹은 듯 힘이 솟는다.

※ 허브차

내게 커피는 긴장을 풀어주는 여유의 한잔이 아니다. 나는 커피 없이도 긴장도와 각성도가 높은 사람이다. 한마디로‘항상 에스프레소 두 잔을 들이킨 상태’다. 이전엔 커피를 한 잔만 마셔도 온몸을 맞은 듯 아팠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며 너무 힘들고 졸리니까, 울며 겨자 삼키듯 양을 늘렸다. 커피 덕에 잠을 쫓았지만 그 긴장감이 훅 꺼질 때면 바람 빠진 풍선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잠 없는 육아기엔 커피만 한 동지도 없다. 내겐 아무래도 커피가 필요했다. 특히 세상은 넓고 맛있는 원두는 많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인스턴트커피를 멀리하게 되었다. 원두커피도 오전 두 잔으로 제한했고 오후에는 허브차를 마신다. 로즈마리나 민트, 레몬머틀은 향이 상쾌해 졸음을 쫓는데 맞춤하다.

소란하던 한해가 조용히 저물어간다. 나이를 더하며,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점차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지난 해엔 태어나 처음으로‘어떠어떠한 내가 되게 해주세요’가 아닌‘오롯이 나답게 아낌없이 나로 살아가는 한 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내년에도 그 마음이 쭉 이어지길 바란다. 더불어 두루두루 건강하며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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