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신용 등급’보다 ‘평판 등급’... “그 사람 어때?”
이제는 ‘신용 등급’보다 ‘평판 등급’... “그 사람 어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2.0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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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그 사람 어때?”

공동체에 속한 인간은 평가 속에 살아간다. 매일같이 평가하고 또 평가 당하는데, 그렇게 쌓인 개인의 이미지를 사람들은 ‘평판’이라 지칭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지니지만, (기업·공직자 임명을 위한) 평판 조회 등의 상황에선 장단점을 상쇄한 총평을 내려야 하기 마련이고, 이때 “A급이에요” “제가 보장합니다” 등의 긍정 답변이 아닌 “글쎄요” “사람은 좋은데...” “똑똑하기는 한데...” 등의 답변이 나오면 이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지난 2007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기업 159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1개 기업(57.2%)에서 평판 조회를 진행한다고 응답했다. 91개 사 중 86개 사(94.5%)는 ‘평판 조회 결과가 최종 채용 결정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뒤이어 2018년 구직사이트 잡코리아가 인사담당자 2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135명(64.9%)이 ‘평판 조회를 하고 있다’고 답했고, 그중 93명(68.9%)은 ‘평판 조회 때문에 채용하지 않은 지원자가 있다’고 응답했다.

평판 조회의 핵심은 크게 일곱 가지 항목(▲인간관계 ▲업무능력 ▲업무스타일 ▲조직과의 융화 ▲커뮤니케이션 능력 ▲리더십 ▲사생활 및 자기관리)으로 요약된다. 방법은 지원자에게 과거 동료 연락처를 받거나, 기업 자체 인맥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헤드헌팅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때 소요되는 비용은 조사 대상자 연봉의 15~30% 수준으로 대개 최고경영자급은 1,000만원 이상, 실무자는 500만원 수준이다. 고가의 비용이지만 상당수 기업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데, 이와 관련해 책 『능력보다 큰 힘, 평판』의 저자 하우석 마케팅컨설턴트는 “아무리 훌륭한 인사시스템을 갖고 있는 회사도 직원들의 능력을 완벽하게 계량화할 수는 없다. 아무리 최첨단 IT 기술을 갖고 있고 스마트빌딩에서 일하는 조직이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계수화는 불가능하다. 이 말은 결국 대상자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 즉 상사나 부하직원 또는 동료들에 의해 사람이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평판 조회는 내부직원 평가에도 적용되는데, 하 컨설턴트는 “(과거 임원 시절) 나 역시 그랬다. 여러 이사진이 모여 중간관리자들은 물론 일반 직원들에 대해서까지 평판 정보를 교환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결국 그런 평판 교환은 직원들의 승진과 연봉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부서배치와 업무 배정 역시 평판에 의해 결정됐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평판 조회 시 어떤 항목에 더 무게를 둘까? 지난 2월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36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판 조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인성 및 성격’(64.2%, 복수응답)과 ‘상사, 동료와의 대인관계’(57.7%)였다. ‘전 직장 퇴사 사유’(48.9%), ‘업무능력’(48.2%)은 그다음이었다. 업무능력보다는 사람의 됨됨이를 우선하는 모습인데, 실제로 많은 기업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기존 사내 질서를 파괴한다면 회사로서는 기회비용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인사담당자는 “혼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슈퍼맨이 아닌 이상 협업 과정에서 계속 불협화음이 난다면, 그건 무능력한 거다. 대다수 기업이 원하는 건 협업에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지, 영웅이 아니다”라며 “관리직을 잘못 뽑으면 부서 간 협업에서 불화가 일어 업무 처리가 더디거나, 서로 엮이기 싫어하는 탓에 시너지 효과가 상실되고 심한 경우 부서 전출 요청이나 퇴사자가 급증한다. 그걸 수습하는데 평판 조회 비용의 수백, 수천 배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토로한다. 결국 개별 능력이 뛰어나도 조직의 질서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면 심사단계에서 걸러내거나 채용 후에도 취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심리학자 뉴콤은 이를 ‘균형 이론’으로 설명한 바 있다. 개인과 조직은 모두 균형 지향성을 지니기 때문에 심리적 불균형 상태가 조성되면 어떻게든 그 원인을 제거해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

평판 조회는 채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민 알권리 보장에 이용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미국에서는 연방 판사 100여명의 학력·병역사항·경력·정치활동·주요 판결사례·언론보도 내용·법조인 세평 등이 기재된 『연방법관연감(Almance of the Federal Judiciary)』이 편찬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검찰이 여러 판사의 세평을 비공식적으로 수집한 사례가 있는데, 특정 판사가 농구를 좋아한다는 등의 세평 내용을 두고 검찰 출신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재판에서 사건을 농구 경기 규칙에 빗대어 설명하면 (농구를 좋아하는) 판사를 더 효율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다. 실제 그런 사례도 많았다”고 언론에 전한 바 있다.

다만 로비스트 활동이나 탐정업을 법으로 제한할 정도로 개인정보 수집을 강도 높게 통제하는 국내에선 평판 조회가 합법과 위법의 경계선을 오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평판 조회 시 조회 대상자의 동의를 받지 않을 경우, (기존에 형성된 업계 인맥을 통하지 않고 무작정 전 직장에 전화해 평판을 조회하는 등의) 상황에 따라 사법처분을 받을 수 있다. 또 공직자의 평판 수집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지난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판사들의 세평을 수집했다는 이유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도 했다.

이렇듯 평판 조회 과정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평판 조회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는 모습이다. 평판 전문가 문성후 박사는 책 『부를 부르는 평판』에서 “SNS를 한글 자판으로 치면 ‘눈’이 됩니다. 지금은 모두 이렇게 ‘디지털 눈’으로 서로의 평판을 지켜보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평판은 결국 회사나 개인에게 모두 ‘신용’으로 평가됩니다. (앞으로는) 기존의 ‘신용 등급’이 아닌, 새로운 신용 등급인 ‘평판 등급으로 평가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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