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화’ 하는 책들… “책 = 감성글귀?”
‘인스타그램화’ 하는 책들… “책 = 감성글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2.0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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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KT경제경영연구소와 DMC미디어가 발간한 보고서 「2020 소셜미디어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국내 인스타그램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1,149만명으로, 카카오스토리(996만명)와 페이스북(985만명)보다 많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인스타그램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다른 두 SNS보다 적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인스타그램은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급증한 SNS다. 

너도나도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니 최근 출판계도 그러한 트렌드에 맞게 바뀌고 있다. 한 출판인은 급기야 “출판계가 ‘인스타그램화’ 하고 있다”고 말한다. 출판인들이 갈수록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인스타그램용’ 책을 만든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있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용’ 책이 어떤 특성이 있는지는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책 관련 게시물을 올릴 때 주로 사용하는 해시태그(SNS 검색용 메타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해시태그는 비유하자면 게시물을 분류하는 일종의 꼬리표이다. 그러니까 게시물에 특정 꼬리표(해시태그)를 붙이고 올리면 그 ‘꼬리표’를 팔로우(특정 게시물을 보겠다고 의사표시)하는 이들이 해당 게시물을 보게 된다. 따라서 많은 ‘좋아요’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팔로우하는 해시태그를 달고, 그 해시태그에 부합하는 게시물을 올려야 한다.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팔로우하는 책 관련 해시태그는 대표적으로 ‘#책 #책추천 #책스타그램 #글 #글귀 #인생글귀 #글귀스타그램 #좋은글 #좋은글귀’이다(이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은 지난 27일 기준 각각 365만개, 106만개, 369만개, 321만개, 355만개, 22만개, 118만개, 183만개, 98만개가 있다). 이러한 해시태그에서 눈여겨볼 점은 ‘글’ ‘글귀’라는 단어다. 인스타그램의 책 관련 게시물 중 절반 이상에는 이 단어들이 해시태그로 붙어 있다. 그리고 그런 게시물에는 대부분 감성적인 글귀가 담겨 있다.                

한 출판인은 “인스타그램에서 책은 곧 감성 글귀”라며 “그래서 출간할 책을 고를 때도 다른 분야보다 에세이에 더 관심을 두게 되고, 에세이 중에서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문구가 있는 책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출판인은 “전보다 여백이 많은 에세이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며 “글이 많지 않더라도 좋은 글귀가 있으면 잘 팔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부터 ‘에세이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에세이 출간 종수가 늘고 있으며, 인기 에세이는 대부분 책에서 글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이에 일각에서는 책이 아닌 글귀를 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책’은 또 있다. 바로 디자인이 예쁜 책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책’을 검색하면 나오는 대부분의 게시물에는 감성적인 배경 위로 책이 놓여있는 사진이 담겨있다. 게시물에 반드시 사진을 담아야 하는 인스타그램에서는 그 내용이 어떻든 ‘못생긴’ 책은 잘 게재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팔기 위해서는 내용보다 디자인에 신경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출판인도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책 관련 게시물이 활발하게 올라오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인스타그램은 그 어떤 SNS보다 독서 문화를 진흥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이라는 ‘틀’에 적합한 책이 만들어지고 유행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책을 사는 이들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비단 마음을 움직이는 글귀나 예쁜 디자인뿐이라면, 좋은 글귀나 예쁜 디자인은 없지만 가치 있는 책들의 설 자리가 줄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집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에 수록된 단편 「독서 기계 살인사건」에는 ‘쇼혹스’라는 이름의 독서 기계가 등장한다. 사람들이 이 기계의 ‘조언’에 따라서 책을 사기 시작하자 작가와 출판사는 이 기계의 ‘입맛’에 맞는 책을 쓰고 펴낸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쇼혹스는 인스타그램이 아닐까.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의 ‘입맛’에 맞는 책을 사고, 작가는 그런 책을 쓰고, 출판인은 그러한 책을 펴내고 있으니까. “책이라는 실체는 사라지는데 그것을 둘러싼 환상만은 아주 요란하다. 독서란 도대체 뭘까?” 히가시노의 말에 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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