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10쪽>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14쪽>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마지막 섹스의 추억」 <22쪽>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40쪽>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사는 이유」 <46쪽>
여름은 감탄도 없이 시들고
아카시아는 독을 뿜는다
「사랑의 힘」 <95쪽>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느날 오후에 대해
아, 끝끝내, 누구의 무엇도 아니었던 스무살에 대해
「나의 대학」 <61쪽>
네가 지키려한 여름이, 가을이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가는구나
「북한산에 첫눈 오던 날」 <56쪽>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지음 | 이미 펴냄│132쪽│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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