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비정성시·하나 그리고 둘’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비정성시·하나 그리고 둘’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9.20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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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대만 뉴웨이브 영화’란 1980년대 등장한 대만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사실 80년대 전까지만 해도 대만의 영화계는 반공·국책 영화 혹은 흥미 위주의 홍콩 오락 영화 일색이었습니다. 이는 군사 독재 시절을 거친 나라의 영화 역사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 1960년대를 지나고, 70~80년대 군사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영화 산업이 질적·양적으로 크게 퇴행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민주화 물결을 타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광수·장선우·이명세·정지영 등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로 인해 한국영화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문 「대만 영화의 뉴웨이브 운동과 정치성에 관한 담론」의 저자 이강인에 따르면 “대륙에서 권력을 잃은 장개석이 1949년 대만에 자신의 깃발을 꽂은 이후 대만영화는 체제를 홍보하거나 반공정신을 고양하는 나팔수 역할을 해왔다”며 “이후 1970년대 말까지 대만영화는 정치적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당의 권력에 복무하는 형태를 유지해오면서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말합니다.

이어 “이러한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영화의 뉴웨이브 운동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발전하는 대만의 시대상황과 맥을 같이 하며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정리하면, 오랜 기간 국가의 체제 선전의 도구로 이용돼온 대만영화가 80년대, 특히 87년 계엄령 해제 등 대만 사회의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시기에 탄생한 영화가 바로 대만 뉴웨이브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사실성을 높이는 촬영 기법(인공적인 세트보다는 로케이션 촬영과 다큐멘터리적 터치를 선호) ▲성장의 주제 선호(감독 개인이 겪은 성장담과 경험 속에서 ‘민중들의 생명력’이라는 주제를 다룸) ▲스타 시스템의 배제(신인과 아마추어 배우를 골고루 기용해 역할에 맞는 배역을 설정) ▲인물의 보통화(사회적으로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룸) ▲시나리오와 언어의 사실성(언어의 사용에서 역할에 따라 그에 맞는 언어들을 사용) 등으로 그 특징을 정리합니다.

촬영 기법으로 말하자면 대만 뉴웨이브 영화들은 세상을 극적으로 혹은 인위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정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에 의한 ‘롱 쇼트’(long shot : 멀리 찍기)와 ‘롱 테이크’(long take : 길게 찍기)를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특징을 보입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편집(장면 전환)을 지연시켜 배우의 액션이 종결된 후의 텅 빈 공간을 얼마간 응시하면서 마치 기록영화처럼 자연과 정물을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이는 프랑스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 :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영화계에 일어난 새로운 물결)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일어난 영화 운동)의 영향을 받은 당시 대만의 젊은 감독(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반생)들의 영화적 태도와 맞물려 있습니다. 누벨바그와 네오리얼리즘 모두 스튜디오 시스템을 거부하고 거리에 나와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삶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등 실존주의적인 감각을 지닌 영화 운동이었습니다. 이는 대만 뉴웨이브 영화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 영화 <비정성시> 스틸컷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1989)는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1947년에 발생한 대만의 ‘2.28 사건’을 한 가족의 몰락과 교차시킨 수작으로 제4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양조위라는 배우를 본격적으로 알린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이 영화는 역사의 비극이 개인(혹은 가족)의 삶을 얼마나 잔혹하게 말살시킬 수 있는지를 매우 뛰어난 영화적 화법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으로 “카메라는 왜 이러한 위치와 움직임으로 인물을 바라보는가?”를 숙고하게 하는,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미학적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스틸컷

이보다는 조금 늦게 개봉했지만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아 비교적 최근의 대만 생활상을 그린 작품, 바로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2000)입니다. 제53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할머니의 죽음과 맞물려 서서히 균열하는 어느 가족의 일상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삶의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훌륭하게 형상화합니다.

두 영화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가족’을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한국의 젊은 감독들의 영화에서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잔영이 짙게 일렁인다는 점 또한 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김보라 감독은 <독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벌새>(2019)를 찍을 때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조민재 감독의 <작은 빛>(2020)이나 최근 개봉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2020)에도 허우 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 같은 대만 뉴웨이브 감독들의 연출적 스타일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소 범박한 분석이지만, 이는 ‘동아시아’라는 단일한 권역으로 묶일 수 있는 대만(허우 샤오시엔, 에드워드 양)과 한국(임권택, 이창동), 그리고 일본(오즈 야스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 특징이란 ‘시대의 문제’를 가족의 이미지를 경유해 포착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을 카메라는 굉장히 관조적으로, 때에 따라 무력하고 무관심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이를 편의상 ‘리얼리즘(Realism) 영화’로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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